北 조폭두목의 최후…총 맞아 죽은 ‘큰 형님’

필자는 남한에 와서 ‘북한에도 조직폭력배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물론 북한에도 ‘조폭’이 있다. 이들은 곧잘 대형 사고도 친다.

1991년 7월 어느 날 필자가 살던 도시에서 조폭 때문에 대낮 총기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북한군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조폭 두목이 사망한 사건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필자는 두 방의 총소리를 들었다. 바로 앞에서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을 보았다.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군인의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은 ㅇㅇ시 불량배(조직폭력배) 두목이었다. 그는 가슴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석경철(가명·당시 28세)은 고등중학교 시절부터 학생들로터 공포의 대상으로 유명했다. 학창시절부터 난폭하기로 소문난 그는 부모와 선생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00시 인민위원회 과장으로 있었으나 아들 때문에 항상 얼굴을 못 들고 다녔다. 안전부(경찰서)에서도 아버지의 체면 때문에 폭행사건에도 그를 여러번 풀어 주었다.

그는 고등중학교(고교)를 졸업하면서 불량학생으로 등록되어 초모생(병역모집)에 탈락했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사회에 나오자 학교시절부터 어울렸던 불량배들이 그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몇 년 사이 그를 중심으로 불량배들이 모여 조직규모가 1천 명 정도로 커졌다. 다른 지방에도 하부 조직이 생겼다. 워낙 유명한 조폭들이라, 다른 불량배들은 상대가 그쪽 조직원이라면 싸움을 피하거나 져주었다.

석경철의 조직원들은 북한 사회의 다른 폭력배들 보다 단결력이 강하고 ‘의리’를 중시했다. 그들은 다른 폭력배들과의 세력 다툼이나 개인 사이의 일에 끼어들어 일을 해결해주고 술이나 음식, 의류를 제공받았다.

때로는 식품공장이나 수산사업소 창고를 습격하여 훔친 물건을 조직원들이 나누어 가졌다. 협동농장의 양곡보관 창고도 습격했다. 이 때문에 조직원들이 안전부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교화소에 가기도 했다.

그들은 안전부의 수사과정에서 매를 맞으면서도 두목에 대해서는 절대로 불지 않았다. 그 덕에 석경철은 안전부의 수사망에서 여러번 빠졌다.

두목이 된 이후 그는 직접 패싸움에는 거의 가담하지 않고 아래 조직원들을 시켰기 때문에 안전부에서도 어쩌지 못했다. 그의 조직원들은 두목과의 의리를 목숨처럼 여겼다.

장례식장에서 “두목을 위해 복수하자”

총에 맞은 그날 그는 10리터짜리 비닐통에 간장을 운반하는 군인들과 시비가 붙었다. 그가 군인들에게 농담으로 “통에 있는 술 좀 먹자”고 말을 던졌다. 군인들도 농담으로 “정말 마시겠느냐” 하며 웃어 넘겼다.

이때 옆에 있던 한 조직원이 정식으로 “술 한 병 달라”고 했다. 군인들이 웃으며 “군인이 대낮에 무슨 술을 가지고 다니겠느냐”고 하며 “통에 있는 것은 식료 간장이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직원은 “이것들이 우릴 놀려?” 하며 군인들에게 시비를 걸어 곧 싸움으로 번졌다. 군인들은 2명밖에 없었으나 석경철의 조직원들은 4명이었다.

당황한 군인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달아나던 군인들은 그들이 계속 쫓아오자 돌아서서 자동보총을 벗어들고 사격자세를 취하며 “서라! 접근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위협하자 다른 조직원들은 멈췄으나 석경철은 계속 다가갔다. 군인들이 자기들을 놀리고 달아났다고 생각한 그는 화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군인들 발 아래로 날렸다.

칼이 땅에 박히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낀 군인 중 한명이 총을 발사했다. 두 발이 발사되어 그의 가슴을 뚫었다.

그가 죽자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고 조직원들이 모여들었다. 안전부에서는 그의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조용히 묻자고 그의 부모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그가 땅에 묻히던 날 조직원 수백 명이 몰려와 두목의 복수를 다짐했다.

군인들 소속 부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24시간 비상경계를 강화하도록 했다. 그 사고와 관련된 2명의 군인들은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석경철의 조직원들은 서로 자리다툼을 하면서 사분오열되어 몇 년 후 거의 사라져 버렸다.

7,80년대에는 평양에도 깡패들이 있었다. 이들이 대동강변에 나와 데이트 하는 남녀에게 시비를 걸고 성폭행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김정일은 이들에게 사살 명령을 내려 한 달동안 안전원들이 폭력배들을 모조리 쏘아 죽인 일도 있었다.

90년대 식량난 이후에는 강도, 절도 등 생계형 폭력이 빈번했다. 지금도 생계형 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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