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문정치’ 전개하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및 부장을 비롯한 5명정도로 구성된 중량급 ‘특사 조의방문단’을 파견키로 함으로써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조문정치가 펼쳐질지 주목된다.

당 비서라면 김정일 위원장의 거의 모든 공식활동을 밀착수행하는 ‘실세 중의 실세’인 김기남 비서가 단장을 맡을 가능성이 크고, 부장이라면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 겸임)이 포함될 수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부장의 파견 가능성을 예상했다.

그러나 일부 관측통은 지난 2002년 10월 북한의 경제시찰단으로 방남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국방위원회 위원이 ‘특사 조문단’에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최고위급 특사 조문단을 파견키로 한 것은 우선 그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래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보여준 각별한 예우의 연장선에 있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김 전 대통령측에 보낸 조문단 파견 통지전문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김 전 대통령측의 부고전문을 받아보기 전에 이미 “사망 소식이 보도되는 즉시 자신의 존함으로 된 조전”을 보내고 특사 조문단을 파견토록 했다고 밝힌 것은 김 위원장이 이번 조문단을 직접 챙기고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민족끼리’의 원칙을 구현했다고 북한이 평가하는 6.15공동선언에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서명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끝까지 최고 수준의 예우를 갖춤으로써 ‘6.15공동선언’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번 ‘특사’ 조문단은 또 6.15공동선언에 명시된 서울 답방을 이행하지 못한 부채 의식도 내포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럴 경우 조문단을 구성하는 면면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그러한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찾을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의 중량급 특사 조문단은 최근 김 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면담한 뒤 현대그룹과 북한의 아태평화위간 대북 협력사업에 대한 5개항의 공동보도문이 나오는 등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것과 관련해서도 주목된다.

조문단장으로 예상되는 김기남 비서는 지난 2005년 8.15 민족대축전에 북측 대표단을 서울을 방문한 길에 국립현충원을 참배함으로써 남북관계의 ‘금기’를 깼던 인물이다.

누구로 구성됐든 김 위원장이 중량급 특사 조문단을 파견하는 것은 남한 정부에 대한 메시지이자, 조문단에 대한 남한 정부의 대응 여하를 보고 현정은 회장의 방북을 승인했던 남한 정부의 진의를 판단해보려는 응수 타진의 의미도 읽을 수 있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던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와 달리 이번에는 북미간 대화 모색 기류 속에 현정은 회장의 방북이 이뤄지는 등 남북 당국이 모두 상호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려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북한의 중량급 조문단의 방남이 남북 당국간 비공식 고위접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 회장의 방북 결과를 놓고 우리 정부도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고, 김 위원장 역시 현 회장의 방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들었을 남한 정부의 ‘진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3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별세 때도 북한은 송호경 당시 아태 부위원장 겸 통전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조문단을 파견했으며, 당시 서영교 남북 장관급회담 남측 대표는 신라호텔에서 송 부위원장을 비공식적으로 만나 연기되고 있던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과 미국의 대북정책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문단에 김양건 통전부장이 포함될 경우 종래 북한 노동당 통전부장의 파트너였던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나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주무장관인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접촉 가능성이 주목된다.

김양건 부장은 현 회장의 방북 때 김 위원장과 면담에 배석했을 뿐 아니라 현 회장과 직접 협의를 통해 공동보도문을 조율한 장본인이어서 현 회장이 가져온 합의문에 대한 북한의 의도를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조문단 문제를 “잘 협의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 위원장의 특사 조문단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 당국간 접촉이 이뤄진다면 현정은 회장이 북측과 합의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게 될 경우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자신의 유지를 실현할 기회를 남북에 제공한 셈이 된다.

한 대북 전문가는 “지난 2002년 방북했던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임진강 수해방지 사업과 임남댐(금강산댐) 문제 등에서 새로운 합의를 만들었다”며 “이 합의는 박 의원의 성과로 간주됐지만 남북 당국간 논의를 통해 후속 이행방안이 마련됐다”고 지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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