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문단, 대남사업 배태랑들로 구성

▲김기남 노동당 비서 ⓒ연합

21일 입국해 22일까지 머무르는 북한 조문단 일행은 대부분이 김정일 최측근이거나 대남사업 베테랑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방문하는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기남은 1926년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나 올해 83살이다. 그는 김일성 시대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는 실무형 간부로, 당선전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다. 특히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특별한 과오가 없어, 지금까지 한번도 ‘혁명화’를 겪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제대학을 유학하는 등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1952년 외무성에 들어가 참사로 활동했고, 주중 대리대사, 외무성 의례(의전)국장을 거쳤으며, 1961년 8월 중앙당 과학교육부 부부장으로 임명돼 외교일꾼에서 선전일꾼으로 변신했다.

1966년 중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근로자사(직업동맹기관지) 주필, 노동신문 책임주필, 조선기자동맹 위원장, 중앙당 선전선동부장을 거쳐 1992년 12월 당 선전비서로 승진하는 등 선전분야에서만 40년 이상 종사했다.

2005년에는 북한의 대남사업 총괄기구 조국통일평화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을 겸직하게 됐다. 현재 그가 맡은 직책은 노동당 비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역사연구소장, 조평통 부위원장 등이다.

김기남은 오랫동안 선전분야에서 김일성-김정일을 찬양하는 각종 구호, 문헌, 노작(논문)들을 집필해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구호인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등은 모두 김기남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주요 문헌이나 각종 축하문도 김기남의 손을 거친 것이 많다는 것이 고위 탈북자들의 설명이다.

김기남은 2005년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고, 당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기도 했다. 당시 북측 고위인사로는 처음으로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아태위원장 ⓒ연합

북한의 대남 사업의 수장인 김양건(61) 부장 역시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북한의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참사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아태위)원장을 겸하며 외교 전반에 참여하고 있다.

2007년 말부터 진행된 대남분야에 대한 숙청작업에서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 등 다른 대남관계 실력자들이 대거 숙청되는 와중에서도 김 부장은 살아 남았다.

그는 김정일이 클린턴 전 미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평양에 불러들여 면담할 때 배석했고, 현 회장과 합의한 5개항 공동보도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2007년 10월 열린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간 회담 성사의 주역이기도 한 김 부장은 정상회담 개최 직전인 9월말 서울을 극비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했으며, 회담 직후인 11월에도 정상선언 이행 방안 논의를 위해 방한해 노 대통령과 주요 당국자들을 면담하고 산업시설도 둘러봤다.

그는 2005년 김정일과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6.17 면담’에 국방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배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남사업 무대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당 국제부에서 말단 부원으로 시작해 부부장, 부장으로 승진한 정통 당 관료이자 중국 및 일본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핵문제로 부시 미 행정부와 대립하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당 국제부장과 국방위원회 참사를 겸하면서 줄곧 김 위원장의 외교브레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김 위원장의 대중국 라인 역을 맡고 있다는 후문도 있다.

조문단원인 원동연(62) 아태위 실장 역시 20여 년간 남북간 주요 고위급 회담과 접촉에 빠짐없이 관여해온 대남분야 실무가다.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 때 막후에서 합의문안을 조율할 정도로 이론적 수준이 높으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때 수행원으로 1차부터 7차 회담에 참가했고 1992년 고위급회담 때는 군사분과위원회 위원으로 나섰다. 1995년 7월 베이징 2차 쌀 회담 때는 북측 대표를, 9월 3차 쌀 회담에서는 대변인을 맡았다.

그는 또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남쪽을 방문했을 때 시찰단의 실무 현안을 책임지는 역할을 했다.

이 밖에 맹경일 아태위 참사는 2007년 남북 장관급회담에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으로 참석한 경력이 있으며, 리 현 아태위 참사는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부장을 각각 수행해 남측에 왔던 경험이 있다.

기술일꾼으로 알려진 김은주는 조문단의 간호사 자격으로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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