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기흡수보다 ‘포스트 민주정부’ 고려해야

▲ 동서독 통일 당시 베를린 장벽 붕괴 모습

대북 봉쇄론을 선호하는 경향은 대체로 6.25를 경험한 전전(戰前) 세대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 세대들은 북한에 별 관심 없는 20∼30대 젊은 세대와는 달리 북한이 반드시 한국의 영토와 기본질서의 일부분이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이 세대들의 통일 열망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전전세대는 통일을 막고 있는 장애물이 김일성, 김정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절대적으로 타당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것처럼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면 한국이 북한을 흡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김정일 정권 붕괴는 곧 흡수통일이고 흡수통일은 곧 김정일 정권 붕괴와 일치하는 것이다. 때문에 누가 흡수통일을 반대한다고 하면 이는 곧 김정일 정권 붕괴도 반대한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 붕괴가 반드시 독일식 흡수통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 김정일 정권 붕괴를 찬성하는 사람들 중에도 흡수통일은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통일을 지지하지만 김정일 정권 붕괴 직후 조기 흡수통일은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가령 김정일 정권 붕괴 이후 현재의 중국과 홍콩의 관계처럼 외교 국방권은 중앙정부가 갖되, 홍콩에 자치정부를 두는 방안, 즉 외교 국방권은 통일한국(중앙정부)이 갖고 북한 지역에 자치정부를 두는 연방제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미 연방합중국’이듯이 남북간의 연방제 형태는 연구를 하면 여러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이 여러가지 사례연구가 아니라 동서독식 단기간내 흡수합병의 문제점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일단 집중한다.

흡수통일은 한국 헌법체계에 북한이 들어오는 것

여기서 독일식 흡수통일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보자.

독일식 흡수통일은 동독 5개의 각 주가 서독의 헌법 체계에 그대로 귀속되는 것이었다. 즉 동독 사람들이 서독 헌법에 명시된 권리와 의무를 서독인들과 똑같이 적용받는 것이 독일식 흡수통일이다.

동서독의 경우 화폐 교환 비율은 실질 가치는 4:1로 서독 화폐가 높았으나 서독은 동독 화폐를 1:1의 비율로 교환하여 400% 절상을 해주었다. 동시에 동독인들에게 서독인들이 누리는 사회 보장 제도를 모두 보장해 주었다. 소위 통일 비용 중 상당 금액은 이와 같은 사회 보장 비용이었다.

만약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었을 때 독일과 똑같이 북한을 한국이 흡수통일한다고 하면 독일과 비슷한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 우리는 독일이 범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남-북간 화폐 교환을 실질 가치대로 교환하는 것이다.

이는 서독이 동독의 화폐를 4배나 절상해서 교환해주는 바람에 초인플레를 유발했던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통일될 시점에 북한 환율이 1달러: 2700원 정도이고 남한 환율이 1:900원 정도라면 북한 돈과 남한 돈을 3:1로 비율로 교환해 줄 수 있다.

화폐 교환은 그 나마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보장 비용은 남한이 엄청난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가령 남한 국민에게 적용되는 최저 임금제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하자.

현재 남한 1시간당 최저 임금이 2007년 기준 3,480원이다. 그런데 현재 북한의 평균 임금은 미국 달러로 2$, 즉 한화로 2,000원이 안된다. 1시간당 2,000원이 아니라. 한달 월급이 2,000원이다. 시간급으로 환산하면 1시간당 10원 정도 된다.

이런 북한 주민들에게 시간당 최저 임금 3,480원이 법적으로 강제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3만4천% 인플레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같은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도 북한 주민들에게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절대빈곤층이 기본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무조건 1인 가구 32만 원, 2인 가구 54만 원, 3인 74만 원, 4인 93만 원, 5인 106만원, 6인 120만 원의 최저생활비를 보장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빈곤 기준에서 보았을 때 북한의 절대 빈곤층을 1천만 정도이고 1인당 평균 월 30만원이 지급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1년에 드는 비용은 30만원 곱하기 12개월 곱하기 1천만명 즉 36조가 된다. 2007년 총 지출 예산 239조라고 했을 때 이는 총예산의 15%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만약 한국 헌법에 입각한 흡수통일이 되어 북한 주민들에게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북한 주민들은 대거 남하하려 할 것이다.

한국의 농촌에도 사람들이 살기 싫어하는데 그것보다 훨씬 열악한 북한 지역에 살려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남하하는 북한 주민들이 대부분 도시에 몰린다고 했을 때 남한의 각 도시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눈에 선하다 할 것이다.

북 지역 ‘정상화’가 먼저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 시절처럼 서로 경제수준이나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 큰 차이가 없던 때에는 흡수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재앙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남북 간의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처럼 벌어져 있을 때에는 그 후유증은 사실상 민족적 재앙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어 남북이 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바로 흡수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때문에 흡수통일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일단 북한 국가의 정상화를 지원하는 것이 남한에게도 좋고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도 좋다. 설령 김정일 정권이 붕괴된 이후에도 북한을 정상화시킬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은 아주 혼란스럽고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다. 북한에 김정일 이후를 대비할 뚜렷한 대체 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처럼 권력공백 이후 인종 간의 분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양한 군부 세력들이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박정희 사후 親전두환계와 反전두환계의 소규모 일시적 충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군부 세력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충돌할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북정책은 먼저 김정일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고 과도기 권력 공백을 최단기간으로 줄여 북한에 조속히 개혁개방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북한 내부에 대체세력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직간접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예상이 쉽지 않지만 김정일 이후의 개혁개방 세력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당이 중심이 된 개혁개방보다는 한국의 개발독재 시기처럼 군부가 중심이 되어 근대화를 추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국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며 군부가 중심이 되어 단시간 내에 급속한 근대화 발전을 한 경험이 풍부하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의 신정권이 시행착오 없이 경제성장과 정치사회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간 동시 이익 생각해야

설령 김정일 정권이 붕괴된 뒤 단기간 내에 북한에 새로운 개혁개방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통일 논의는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

우선 새로운 정권은 북한체제의 정상화와 경제재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북한 정권이 안정화되기도 전에 통일 흐름이 강화된다면 이는 북한 정권의 불안정을 초래하여 북한을 더욱 혼란 속으로 몰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1인당 GDP가 현재 한국의 1/3 수준인 7천달러 이상 될 때까지 통일 논의를 유보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대신 한국은 북한의 신정권이 경제건설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국들과 상의하여 북한의 안보 부담을 덜어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김정일 정권과 달리 친남 정책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시기 동안 남북 간에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서는 안된다. 북한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 북한 내 주민들 사이에 남한과 빨리 통일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럴 때 한국 국민들은 남북 모두의 이익과 미래를 생각할 때 통일 논의는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냉철하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북 개혁개방, 흡수통일로 바로 이어질까

일각에서는 북한이 개혁개방 되면 북한에 남한의 발전된 실상이 알려져 동서독과 같은 흡수통일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서독의 경우와 남북한의 경우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동서독은 동독의 급격한 붕괴와 통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아무런 준비없이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바람에 동서독 지도부가 국민들의 정서에 그냥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북한의 경우는 김정일 정권의 필연적인 붕괴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다. 대비를 잘 하고 계획을 잘 짜면 급격한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차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동서독의 경우는 동독 주민이 흡수통일을 원했을 때 서독 정부와 국민들이 이를 적극 수용했다는 것이다. 만약 서독 정부가 서독 국민들과 동독 국민들에게 조기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일관되게 설득했더라면 비록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겠지만 조기통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경우는 독일의 교훈도 있고 남한 국민들 대다수가 북한의 실상을 잘 알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통일 문제에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남한의 여론은 갈수록 전전 세대보다는 전후 세대가 주도해 갈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이고 감성적 통일을 바라는 여론보다는 사태를 냉철히 보자는 여론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들 때문에 김정일 정권의 붕괴와 북한의 개혁개방은 남북 조기 흡수통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별 설득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지금부터 김정일 이후 철저한 대비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체제, 하나의 헌법에 입각한 완전한 통일은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된다. 완전한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도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등을 통해 과도기를 오래 가지는 것이 좋다. 현재 남북한 주민들의 평균 의식 수준의 차이는 동서독 통일 당시 동서독 주민들 차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다.

굳이 비교하자면 근대적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현재 북한 주민들의 평균 의식수준은 한국의 5,60년대와 비교할만하다. 경제적 차이도 문제지만 정신, 문화적 차이를 좁히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김정일 정권이 교체된 이후 적어도 두 세대는 지나야 완전 통일이 되어도 큰 후유증이 없을 것이다.

이 지구상 최악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는 것은 더할 바 없이 기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김정일 이후의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북한을 정상화하고 근대화할 강력한 정권 수립을 지원하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 이후 북한 국가 정상화에 실패한다면 김정일이 사라진 기쁨은 잠시이고 그 뒤 곧바로 찾아올 한반도의 대혼란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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