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6자회담 재개의 선결조건으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미북간 이슈가 ‘선 제재 해제’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 각종 매체를 통해 회담 복귀의 조건으로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 등 관련국들은 행동 대 행동이라는 단호한 대응을 보이고 있어 6자회담 재개 국면에서 양측간 갈등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제의한 ‘평화협정 회담’은 6자회담이 재개된 이후 별도의 포럼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합의만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대북제재 해제는 구체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선 제재 해제 요구가 6자회담의 실질적인 장벽이 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8일 발표한 담화에서 “6자회담이 다시 열리려면 회담을 파탄시킨 원인이 어떤 방법으로든 해소돼야 한다”며 “우리가 제재 모자를 쓴 채로 6자회담에 나간다면 그 회담은 9.19공동성명에 명시된 평등한 회담이 아니라 ‘피고’와 ‘판사’의 회담으로 되고 만다”고 주장했다.
앞서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 대사도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유엔과 미국의 모든 제재가 풀려야만 6자회담과 평화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며 선(先)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선(先) 제재 해제 요구는 6자회담 교착의 책임을 주변국에 떠넘기고, 비핵화 논의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전술이라는 점에서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계좌 동결 문제를 이유로 지난 2005년 말부터 1년여 넘게 6자회담을 공전시킨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도 ‘대북제재’ 문제를 의제화 하지 않겠다는 것이 관련국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9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선(先) 제재 해제를 요구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대해 “현 시섬에서 대북제재를 해제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재검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미국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날 한 강연에서 “북한은 6자회담 복귀에 앞서 안보리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6자회담의 교착 책임을 국제사회에 전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6자회담이 재개돼 북한이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게 되면 안보리 결의문에 따라 대북제재 완화 및 해제에 대해 안보리가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의 전례를 비춰볼 때 북한은 6자회담에 나오는 것 자체를 중요한 카드로 생각하고 있다”며 “북한은 대북제재의 강한 압박의 고리를 벗고 싶어 하기 때문에 시간을 좀 끌면서 6자회담에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측의 평화협정 회담 제의와 선(先) 제재 해제 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관련국간의 논의도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오는 23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미 관리들과 회담을 갖고 6자회담 재개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