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권 수립 60돌 `빈손’ 맞이

북한이 9일 정권 수립 60돌을 맞아 평양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열어 만성적인 식량난을 비롯한 위기 속의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고 대외적으로 체제 생존의지를 과시한다.

북한은 이를 위해 오전 평양시내 중심 인민대학습당 앞 김일성 광장에서 대규모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열병식과 퍼레이드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열병식과 군사퍼레이드는 북한이 미사일 등 신형 무기를 새로 선보일지 주목되고, 특히 최근 일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다시 제기됨에 따라 김 위원장의 등장 여부에도 외부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 1998년 정권 수립 50돌 때는 2만명 규모의 열병식과 100만명의 군중시위, 2003년 55돌때는 1만명 규모의 열병식과 수십만명의 군중시위를 가졌으며 모두 김 위원장이 참석했다.

9.9절에 앞서 8일 열린 60돌 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김영일 내각 총리는 보고를 통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해 우리나라를 21세기의 사회주의 경제강국으로, 인민들이 부러운 것이 없이 잘 사는 사회주의 낙원으로 건설하는 것은 우리 앞에 나선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8일 정권 수립 60돌 기념 ‘정론’에서 북한 정권의 60년 역사를 회고하면서 “한 나라가 당할 수 있는 온갖 풍상고초를, 한 국가의 생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최악의 시련을 다 이겨낸 우리에게 이제 더는 무서운 것이란 없게 되었다”고 북한 체제의 ‘생존’을 강조했다.

북한은 이번 9.9절을 전후로 다양한 행사들을 열어 ‘경축’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김일성화(花).김정일화’ 전시회가 5일부터 평양시내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에서 열리고 있고, 평양체육관에서는 국가미술전람회가 3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평양 릉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는 집단체조 ‘아리랑’이 지난달 4일 개막돼 정권 수립 60돌을 기념해 특별히 제작한 집단체조 ‘번영하라 조국이여’와 함께 공연되고 있다.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는 국가도서전람회가,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는 전국산업미술전람회가 각각 열리고 있으며, 김일성 부자의 업적을 선전하는 영화들이 평양과 각 지방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평양 한 복판에 있는 주체사상탑 광장을 비롯해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있는 만수대 언덕과 청년공원 야외극장 등에서는 남녀 근로자들과 청년학생들의 경축모임이 연일 열리고 있다.

중국 국제우호연락회 대표단, 멕시코 노동당대표단, 재일본 조선인 축하단, 에니케 로만 에르난데스 쿠바 제(諸)인민간 친선협회 제1부위원장, 파키스탄 자력갱생연구협회 서기장 등 외국의 축하 사절도 평양에 도착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에게 축전을 보냈다.

그러나 올해가 ‘꺾어지는 해'(5,10주년)의 기념일인 점에 비춰 북한의 ‘경축’ 분위기가 비교적 차분하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북핵 6자회담의 진전으로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던 당초 예상이 검증체계를 둘러싼 북미간 대립때문에 빗나가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도 경색돼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됐던 각종 경제협력 사업의 추진이 중단된 상태여서 북한은 사실상 ‘빈손’으로 9.9.절을 맞게 됐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조치가 이뤄졌다면 북한이 60돌 기념행사를 통해 대대적으로 과시했을 것이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미국과 다시 대립하는 상황”이라며 “올해는 일단 내부 결속과 질서 유지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 수립 60돌이라는 정치적 의미도 ‘미 제국주의와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성과를 내세울 것이 별로 없어 그동안의 압력이나 제재에 굴하지 않고 생존했다는 데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지난 60년동안 사회주의 건설 실험에서 실패해 제대로 된 국가를 건설하기보다 사회주의를 해체할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무망한 사회주의 건설 목표를 포기하든지 유일수령체제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리더십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쇠락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948년 9월9일 소련군의 지원아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한 북한 정권은 1980년대 후반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고 중국의 시장경제화 추구 속에서 위기를 맞기 시작해 90년대 중후반 잇따른 자연재해까지 겹쳐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체제위기가 만성화됐다.

북한 정권은 핵무기 개발과 이를 카드로 한 대미 협상을 통해 체제유지를 모색하고 있으나, 6자회담이 검증체계 구축 문제에서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 채 미국의 정권교체기를 맞고 있어 당분간 전망이 불투명하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