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점차 ‘시장사회주의’ 형태로 전환되어 나갈 것

▲ 계획과 시장의 공존 (삼성경제연구소, 임수호)

북한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표상인 ‘계획경제’는 오래 전에 붕괴됐다. 그런데도 왜 북한 체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까?

1990년대 중반의 식량위기 때 200만 명 이상의 대량아사를 낳은 북한에서, 제2의 식량난이 도래했다는 지금은 왜 예전만큼의 대규모 아사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는 바로 ‘북한 경제의 시장화’다. 배급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주민들은 이제 시장에서 돈으로 식량을 구입하고, 북한 정권은 시장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며 식량 및 소비재 부족현상을 완화하고 있다.

시장의 확산은 북한 고유의 체제를 변질시키는 위협요인이지만, 동시에 붕괴의 기로에 서 있는 북한 경제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책 ‘계획과 시장의 공존(임수호)’은 이러한 현 북한경제의 특징을 ‘사유화 없는 시장화’로 정의했다.

저자인 임수호씨는 “북한 경제가 계획이 유일한 ‘고전적 사회주의’에서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는 ‘개혁사회주의’로 이동했다”며 “(이는) 아래로부터 시작된 자생적 시장화 움직임이 정권 차원의 시장 경제적 개혁을 ‘강제’하는 과정, 혹은 정권이 그러한 자생적 시장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 속에서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책은 북한 경제의 다양한 분야에서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는 이중경제적 특징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추적하고, 이를 통해 북한의 체제 변화 가능성을 전망했다.

저자는 북한의 ‘사회주의 제2경제’라 볼 수 있는 시장의 맹아가 “1980년대 중반 위로부터의 분권화 개혁에 의해 뜻하지 않게 잉태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북한이 중공업 우선 전략에 따라 생겨난 만성적인 식량 및 소비재 부족현상을 완화하고자 허용한 소규모 사적 생산이 오히려 시장을 키우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형성된 제2경제가 번성하게 된 시기를 저자는 “1990년대 후반 경제난 때”라고 지적했다. 경제난으로 계획경제를 지탱하던 배급제 등이 붕괴되자 온갖 합법적, 불법적 형태의 사적 경제행위가 급속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 내부에 사적 경작과 부업, 개인뙈기밭 경작과 밀무역, 기업소간 뒷거래 등의 행위가 만연했으며, ‘전인민의 상인계층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시장 메커니즘이 “불법적 영역에서 시작해 관행화되면서 반합법적 지위가 부여되는 방향으로, 아래로부터의 자생적 시장화와 당국의 대응이 교차하면서 점차 공식경제의 일부분으로 포섭돼 왔다”며 “7.1 경제관리개선조치는 시장이 공식경제 내부로 수용된 계기였다”고 강조했다.

북한당국은 국정가격을 시장 수준으로 대폭 인상하는 가격 현실화를 통해 계획 영역의 상당수 물품이 암시장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고 중앙공급능력을 복원하고자 했지만 이마저 실패하고, 결국 시장을 공식경제화 해버렸다는 것이다. 기존의 농민시장을 합법적 상설시장인 ‘종합시장’으로 개편한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저자는 “북한이 ‘시장의 수용을 통한 통제력의 제한적 회복’이라는 절충을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북한은 시장을 공식경제화한 대신 시장에 부과하는 사용료와 국가납부금 등으로 재정을 확충해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북한은 구체제로의 복귀가 아닌 이미 확산된 시장에 적응해 계획과 시장이 공식경제 내부에서 공존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그렇다면 향후 북한의 경제체제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

저자는 북한 체제가 점차 “현재의 개혁체제에서 시장사회주의(시장>계획)로 전환되어 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계획경제에서 시장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오히려 공식경제를 복원하려는 국가의 시도를 통해서 더욱 진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에 따르면 북한이 고전적 계획경제로의 복귀를 위해 시장을 억압할수록, 시장이 더욱 깊숙이 퍼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사회주의 고유 시스템을 침식해 체제를 위협하게 될까봐 시장 장려를 두려워할 것이다.

시장을 억압하지도 장려하지도 못하는 북한당국의 딜레마 속에서 현실적인 대안은 시장의 합법화를 통한 재정원천 확보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는 길밖에 없어 보인다. 예측 가능한 미래에 체제 붕괴와 같은 급진적 변화가 오지 않더라도, 북한은 어쩔 수 없는 시장의 확대에 기생하며 체제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인 가능한 경제적 현실에서 출발한 ‘아래로부터의 접근’을 통해 북한에서 시장이 계획을 대체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체제 변화 전망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접근은 눈여겨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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