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젊은이 데이트 코스 ‘즉석만남 집’ 뜬다

최근 북한의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들에 커피 등의 음료를 파는 찻집이 늘고 있다.


특히 찻집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연애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내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다방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올 때를~”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커피 한 잔'(1968년 펄시스터즈 발표)을 들으며 초조하게 연인을 기다리던 과거 우리네 모습이 떠오른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작년부터 평양과 신의주, 원산 등에서 커피를 파는 찻집이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은 함흥, 청진, 혜산 등 북쪽 지역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청진에도 찻집이 여러 곳 생겼다”며 “중국인이나 규모가 큰 상인이나 사업가들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지만, 젊은 층들도 연애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 사람들이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말을 한다”고 전했다.


양강도 소식통은 “여기에도 ‘송봉 찻집’과 ‘압록강 찻집’이 인기가 있다”며 “스무 살 난 젊은 애들의 연애 장소로 사람들은 ‘즉석만남 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에서 차나 커피를 즐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먹고 살 걱정으로도 바쁜 주민들에게 있어 차나 커피는 간부들의 ‘사치품’으로 인식돼 왔다. 일반 주민들에게 차는 여름철 한때 먹는 냉차라고 불리는 설탕물이 거의 유일했다.


따라서 차를 즐길 수 있는 찻집을 주민들이 이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차집’으로 명명되던 곳이 문을 열어도 모두 아이스크림이나 맥주 등만 팔았다고 탈북자들은 소회했다. 그러나 이곳들도 겨울에는 손님이 없어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북한에 커피 등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다. 중국을 통해 ‘커피믹스’가 들어와 장마당에 유통되면서 일반 주민들도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집에서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정도였다고 탈북자들과 소식통들은 전했다. 


2008년에 한국에 입국한 한 탈북자는 “탈북하기 전에는 커피를 마시거나 찻집에 앉아 잡담을 할 여유도, 조건도 되지 않았다”며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을 때는 손님이 오면 먼저 차나 커피를 권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 많이 당황했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찻집 문화가 확산되는 데는 역시 시장화 원인이 큰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달리 시장 활성화로 상인들이 거래와 사적 만남의 공간이 필요해졌다. 여기에 부익부빈익빈이 심화 되면서 간부집과 부유층 자제들이 연애공간 등으로 찻집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외부 문화가 유입되면서 이전과 다른 문화를 추구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중국을 통해 DVD나 한국 제품 등이 유입되면서 한류(韓流)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 찻집 바람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2010년에 북한을 탈출한 한 탈북자는 “북한에 찻집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며 주민들이 커피를 마신다는 것 또한 많은 발전이다”며 “이것은 다 북한 주민의 의식수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청진과 혜산 등의 찻집들은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경에 문을 닫는다. 상업관리소에 등록해 매월 수익금의 30%를 바치면 당국으로부터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고 운영할 수 있다. 커피와 차도 장마당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영업을 중지한 식당이나 식료상점들이 찻집으로 업종을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중국산 커피는 한잔에 500원, 한국산 커피는 800원씩에 팔리고 있다. 쌀 1kg이 2300원 선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비싼 편이지만 사람들은 호기심과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찻집을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현재 장마당에서 커피믹스 20개가 들어 있는 박스 한 개의 가격은 1만원 정도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들여온 커피와 일회용 한국커피를 많이 찾고 있어 커피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강도 소식통은 “한국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런 찻집을 보면서 ‘커피숍이 아니냐, 우리나라도 이제는 남조선을 닮아가고 있다’며 좋아하지만 커피 세 잔이 쌀 1kg와 맞먹어 나이 많은 사람들은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고 주민 반응을 전했다.


한편 찻집을 연 주민들은 당국의 입장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찻집 상호로 ‘백두’ ‘류경’ 등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자극적인 상호보다는 익숙한 상호를 걸어 북한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것이란 전언이다. 


또 한국 커피를 버젓이 팔고 있고, 청소년들이 찻집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걱정이라고 한다. 양강도 소식통은 “한때 성행했던 당구장도 도박장이라는 신소가 제기돼 김정일이 전국에 있는 당구장을 모두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한국 커피를 판매하고 중학생들의 연애장소라는 신소가 들어가면 없애라고 할지 모른다고 차집 주인들은 걱정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