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전쟁 노병들의 비참한 말년

6.25전쟁 60주년을 맞으며 남한 국가유공자와 전쟁노병들의 사회 보장과 복지,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 국가공로자와 전쟁노병들의 삶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목숨까지 내 놓아야야 했던 전쟁 노병들. 동족상잔의 비극은 같이 겪었지만 통치자와 사회제도에 따라 그들 삶의 말년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6월 25일~7월 27일까지를 ‘반제 반미 투쟁월간’으로 정하고 6.25전쟁에서 공을 세운 ‘공화국 전투영웅들과 전쟁노병들과의 만남’, 각종 선전매체의 인터뷰, 전쟁 영화 상영 등에 힘을 쏟는다.


이맘 때면 고령인 전쟁 노병들은 자신이 소속된 당 조직의 지시에 따라  건설현장이나 공장, 기업소, 농어촌, 중앙기관등에 나가 전쟁실화 강연 등을 통해 체제옹호를 설파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이전까지 전쟁 노병들을 두부류로 나누어서 특별 공급 대상으로 대우했다.


우선 1부류는 ▲공화국영웅칭호자 ▲전쟁 영예군인(전시 상해자) 1급으로 국기훈장 및 노력훈장 1급~2급 ▲전쟁공로자메달(훈장) 수상자 ▲군공메달 수훈자 등으로 하루 백미 800g 배급과 한달 생활보조금 120원을 지급했다. 2부류는 ▲국기훈장 2급~3급 전쟁공로자메달 수상자 ▲군공메달 수훈자로 등으로 하루 잡곡 600g과 한달 생활보조금 60원이지급됐다. 


전쟁노병들과 전사자 가족들에게는 ‘대동강TV’와 같은 가전제품, 양복천, 여성 한복감 등이 ‘장군님의 선물’ 명목으로 공급되기도 했다. 


사회적 우대 정책도 실시되어 공공장소나 기차, 버스, 상점들에 영예군인 및 국가공로자 좌석도 만들어 놓고, ‘국가공로자 가족 돕기 운동’도 적극적으로 벌여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생활보조금도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상황이 닥쳤다.


보조금 타는 날짜가 되면 전쟁노병들은 지역 동사무소 앞에 주저 앉아 몇일씩 기다리다 그냥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마음대로 찾아 쓸 수도 없는 생활보조금 저축통장만 쥐어져 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가슴 한가득 무겁게 철럭거리는 훈장과 불편해진 팔다리 일 뿐이다.


그나마도 평양시 거주 전쟁 노병들은 해마다 7월 27일 ‘전승 기념일’에 평양 옥류관으로 초대돼 평양냉면 한 그릇과 몇가지 선물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방에 살고 있는 전쟁노병들 중에는 “국가 보조금을 바라고 있다가 굶어 죽는다”면서 아예 산골마을로 들어가 80세가 넘은 노구를 이끌고 뙈기밭을 일구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젊고 건장한 사람들도 먹고살기 힘든 세월인데 오래 살아 무슨 낙을 보겠냐”며 현실을 비관해 자살하는 전쟁노병들까지 생겨나 북한 전쟁노병들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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