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전민무장화’첨병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붉은청년근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북한에서 9월 12일은 붉은청년근위대 창립절이다. 붉은청년근위대는 1970년 9월 12일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조직된 북한 학생들의 비정규 민간무력이다.

북한에서 붉은청년근위대 창설은 김일성이 1962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5차 전원회의에서 ‘조성된 정세와 관련된 국방력 강화문제’를 제시한면서부터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이에 기초해 4대 군사노선으로 전민무장화·전국요새화·전군간부화·전군현대화가 제시되자 1963년부터 군사노선관철을 위해 강력한 민간무력 조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4대 군사노선 관철을 위해 전민무장화 즉 전체 인민의 무장화를 실현하기 위해 비전투성원인 일반 주민들로 비정규 군사조직을 구성했다.

이에 따라 사로청(현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 대상자를 중심으로 붉은청년근위대를, 대학생들 중심으로 교도대를, 직장인들(여성은 30세 이하 미혼, 남성은 45세까지)로 노농적위대를 조직했다.

북한은 사회주의헌법 86조에서 조국 보위를 공민의 의무로 지정하고 북한에서 사는 공민이라면 누구나 무조건 조국보위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 짓고 있다.

때문에 북한의 정규 군사조직인 인민군대에 입대하지 않았다 해도 비정규 민간무력에 속해 군사훈련을 받게끔 되어 있다.

결국 북한 사람이라면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없이 공민의 의무라는 사슬에 매어 정치 조직과 사회생활, 군복무라는 울타리안에서 생활하게 된다.

붉은청년근위대는 인민무력 중 연령층이 가장 낮은 14~16세에 이르는 북한의 고등중학교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의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까지 소년단에서 생활하지만 중학교 4학년부터는 북한의 청년 조직인 김일성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에 가입한다.

이때 학생들의 나이는 만 14세로 미성년에 속하지만 붉은청년근위대에 무조건 입대해 북한의 모든 공민들이 지니는 조국보위의 임무수행을 위한 첫 군사훈련을 받게 된다.

붉은청년근위대의 지휘체계는 조선노동당 민방위부에 소속되어 있으며 학교별로 대대, 중대 단위로 구성 되어있다. 군사교육과 훈련은 중학교 4학년 방학을 계기로 시나 군에 꾸려진 군사야영소에 집결 되어 받는다.

훈련기간은 창설 이후 변화를 거듭해왔다. 2007년 입국한 탈북자 김모(남, 38세) 씨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가 군당 민방위부 부장이어서 붉은청년근위대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다”며 “1970년대 말까지는 한 달 동안 훈련을 진행했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훈련기간이 보름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훈련기간이 줄어든 데는 국가의 경제적인 부담이 커지고 여름방학 전 기간을 야영소에서 군사훈련만 시키는 것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는 야영소의 생활조건이 꽤 괜찮은 편이었다. 식사도 쌀밥에 국, 3찬을 유지했다. 또 1주일에 1회 돼지고기 같은 특식도 배급됐다.

북한 경제가 사실상 붕괴 상태에 들어간1996년부터 훈련기간은 일주일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야영소에서 생활할 여건이 되지 않아서 집에서 가까운 주변의 적위대 사격훈련장으로 출퇴근하며 훈련했다. 이 때 훈련 지시는 해당 적위대장이 맡았다. 훈련 장소와 방식이 악화되고 일부 학생들은 끼니까지 거르다 보니 학생들은 훈련에 집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놀기가 일쑤였다.

그 후 2002년부터 다시 예전처럼 야영소에 가서 훈련을 진행하기 시작했지만 경제사정은 여전해 훈련 기간은 10일로 줄어 들었다. 훈련의 질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붉은청년근위대원들이 입는 군복과 모자, 혁띠 등 복장은 규정상 민방위부에서 공급하게 되어 있다. 최근 들어 어려워진 경제 사정으로 인해 자체로 적위대 훈련복을 준비해 입거나 심지어 옷을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은 학생복에 일반 바지를 입고 참가하기도 했다.

이들의 군사훈련을 담당하는 지휘관들은 민방위대에 소속되어 있는 소대장(시 또는 군에서 각 리들을 담당한 적위대장들로 이뤄짐)이다. 이들 지휘관들은 군사에 대한 아무런 상식도 없는 소년, 소녀들에게 초보적인 군사 지식들을 가르친다.

훈련은 주로 방학에 진행하는데 지정된 날자에 맞춰 7일간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자체로 준비하고 학교에 모여 지정된 훈련장소로 이동한다. 해당 지역에 도착하면 담당 소대장들이 마중 나와 야영소로 인도한다. 야영소들은 대체로 시외의 깊은 산속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훈련에는 재래식 무기부터 각종의 무기들에 대해 모두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 장비들이 제한돼 있어 사격훈련은 북한의 재래식 무기인 자동보총과 기관총, 권총에 그친다.

주로 사격장에서 이론과 사격훈련을 병합하여 진행하는데 엎드려 사격과 끓어 앉아 사격, 서서 사격 등 다양한 사격자세를 가르친다. 멈춰있는 목표물과 움직이는 목표물의 조준법과 방아쇠 당기는 법, 발사 시 호흡조절 등 초보적인 사격방법을 가르친다.

훈련 총화를 위해 진행하는 사격에서는 자동보총 사격만을 진행한다. 사격은 한번에 5명씩 일인당 실탄 세발, 참호에 서 서사격 자세로 진행해 사격훈련에 대한 판정을 받는다. 총점 30점으로 25점 이상은 우, 18점 이상은 양, 그 이하는 급으로 평가한다.

사격에서 우수한 대원의 가슴에는 꽃송이를 달아주고 전체 훈련생들이 박수로 축하하고 기념촬영도 진행한다.

붉은청년근위대 훈련에는 특별히 건강이 좋지 않은 학생을 제외하고 모든 학생들이 남여 불문하고 참가해야 한다. 훈련 도중 다치거나 질병이 발생한 학생은 병원에 후송해 치료를 받는다.

필자도 탈북자의 한사람으로 붉은청년근위대 시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격에서 ‘우’를 맞고 빨간 꽃송이를 가슴에 달고 찍었던 사진도 있다. 야영소에 도착한 첫 날밤 처음으로 군대식 ‘취침·기상’동작을 배웠다. 그리고 군복과 모포를 개어놓을 줄 몰라 밤새 반복 동작을 계속해야 했다. 그리고 자동보총을 처음 쥐던 날 총의 무게에 실려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름동안의 사격훈련을 진행했지만 판정 받는 날까지 사격 자세와 방법을 익히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옆사람의 총소리에 깜짝 놀라 얼떨결에 방아쇠를 당기지만 목포물에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하기도 한다. 또 손이 후들후들 떨려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여자 훈련생도 있었다.

붉은청년근위대에 속해 있는 학생들은 방학 며칠 군사 훈련을 받지만 이 외에는 훈련이 없기 때문에 형식상 군사조직 성원일 뿐 실제로 정상적인 군사훈련을 받는 전투성원이라 보기는 어렵다.

북한은 자신들의 ‘전민무장화’ 실현의 한 표본으로 100만 붉은청년근위대를 내세우지만 실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구호만 앞세운 채 형식적인 군사 훈련만을 실시해 전투력은 형편 없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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