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적군파 ‘보호’->’오불관언’으로 변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요건의 하나로 꼽히는 북한내 일본 적군파 대원 문제에 대해 북한은 “일본으로 귀국할지 여부는 자신들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라며 ‘오불관언’ 입장을 취해왔다.

“우리(북한)는 그들이 자기 조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데 대하여 반대하지 않는다. 요도호 문제는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측과 이전 적군파 성원들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본 사람들 자체의 내부 문제”라고 강조한 지난 2004년 7월 ‘조선중앙통신사 보도’가 적군파에 관해 북한이 공식 입장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가장 최근의 것이다.

북한이 늘 이런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니다. 2000년까지만 해도 북한은 미국와 일본이 적군파 문제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며 북한에 거주하는 적군파 대원들을 감쌌었다.

제2차 북.일 적십자회담을 앞둔 2000년 3월 일본이 적군파 대원의 추방 문제를 제기하자 북한은 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우리는 결코 일본 경찰의 역할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천명”했다면서 적군파 대원들의 북한 망명은 정치적 망명이므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제적인 관례라고 주장했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도 “코를 들이밀 문제가 아니다”고 일축한 뒤 “요도호 사건 문제는 테러지원국 문제와 결부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었다.

북한 당국의 이러한 입장의 변화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7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적군파 대원의 송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부터로 볼 수 있다.

당시 외무성 대변인은 “요도호 관계자들이 귀국의사를 표명”했다면서 “요도호 납치 사건 발생 전말이 어떻든간에 일본인들이 제 나라 땅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데 대해 우리로서는 구태여 막아나설 필요가 없으며 그들의 귀국 문제는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의사와 요구에 따라 타당하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NHK 등 일본 언론들은 “북한이 이 문제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멤버의 귀국을 용인한다는 뜻을 밝혔다”며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던 북한의 이러한 담화는 “지금까지의 방침을 바꿔 북조선이 귀국을 용인한다는 생각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었다.

북한에 망명했던 적군파 대원 9명중 우두머리인 다미야 다카마로와 대원인 도시다 간타로, 오키모토 다케시 등 3명은 북한에서 사망했고, 다나카 요시미, 시비다 야스히로 2명은 일본으로 송환됐으며 나머지 4명은 아직 국제수배자 명단에 남아 있는 채 가족과 함께 북한에서 살고 있다.

미 국무부는 최근 발표한 ‘2007년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이 적군파 요원 4명을 여전히 보호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적군파 대원들의 북한내 생활은 북한 매체에 공식 보도된 적이 없으나, 이들은 1990년대에 일본인 관광객 유치 활동을 했으며, 일부 국내외 보도에선 이들이 일본인 납치 및 위조달러 유통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들은 1992년 6월 ‘조(북).일 친선여행사’를 만든 후 이듬해까지 중국 베이징을 통해 일본인 관광단 4개팀을 유치했으며, 이를 위해 북한 당국이 제공한 평양시 삼석구역의 별장을 숙박시설로 개조하기도 했다.

적군파 대원인 다나카는 1996년 캄보디아와 베트남간 국경지역에서 북한으로 입국하려다 위조달러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으나 1999년 방콕 형사재판소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고 2000년 일본으로 강제 송환됐다.

다나카는 1998년 런던 유학 중 행방불명된 고베 출신의 여성을 유인해 북한 공작원에게 넘겨준 혐의로 20002년 일본 경시청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다.

북한이 적군파 대원의 추방을 실천에 옮긴다면 이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여건을 조성하는 데 초점이 있지만 동시에 납치문제를 포함해 대일 관계 개선 용의를 대내외에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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