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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라면 시장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농심 신(辛)라면이 북한 시장들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북한 내부 소식통이 2일 알려왔다.
이날 ‘데일리엔케이’와 통화한 평안남도 소식통은 한국 ‘신라면’에 대해 “지금 사발(컵)라면은 시장에서 3천 5백원, 포장(봉지)라면은 2천 5백원 정도 한다”면서 “간부들이나 있는 집들에서 남한 신라면이 중국라면보다 훨씬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라면을 ‘꼬부랑 국수’라고 부르는데 강냉이 국수에 비해 면발이 부드럽고 국물맛이 매콤하고 맛이 좋아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꼬부랑 국수를 더 선호하게 된다. 북한 주민들은 라면이 국수에 비해 ‘맛내기(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맛이라 먹기가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소식통은 북한의 가장 큰 규모의 상설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평양과 평성, 그리고 양강도 혜산에서 특히 신라면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처음 한국 신라면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이다. 당시 남한의 대북지원 물자에 ‘포장마차’라는 봉지라면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북한 주민들은 ‘신라면’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북한에 ‘신라면’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포장마차’ 라면에 이어 중국에 친척방문을 다녀온 주민들이 중국산 라면속에 일부 ‘신라면’을 섞어 들여 오면서부터이다.
당시 북한에 들어가는 상품들은 대부분 한글표기가 되어있어도 초기 북한 세관에서 ‘신라면’에 대한 특별한 통제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역일꾼들이나 친척방문을 다녀온 주민들이 상급에 바치는 선물로 ‘신라면’을 선호했고 또 밀수꾼들을 통해 남한의 ‘신라면’ 맛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북한 장마당에서 판매가 꾸준히 늘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용천 폭발사고가 터지자 남한에서 북 지원 물자에 중국산 신라면을 대량으로 보내면서 중국산 신라면이 북한 시장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 북한에 건너간 중국산 신라면은 3만박스가 넘었다. 한 박스에 20개가 들어 있으니 60만개가 북한에 보내진 것이다. 이중 대다수가 군대로 흘러갔지만 군대에서 다시 시장으로 흘러나온 양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주민들속에 ‘신라면’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지난 2007년부터 북한 당국이 남한의 ‘신라면’을 판매 금지품목에 넣으면서부터라는 것이 많은 북한 주민들의 전언이다. 판매금지 품목으로 넣어놓자 오히려 주민들이 신라면을 구매하려는 욕구가 더 높아졌다고 한다.
한편 양강도 소식통은 “지난해부터 남조선 상품들에 대한 단속이 심화되면서 장사꾼들도 ‘신라면’을 감춰놓고 판다”면서도 “파는 사람들은 적은데 찾는 사람들은 워낙 많다보니 ‘신라면’의 인기가 더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엔 세관에서 ‘신라면’을 특별히 지목해서 단속하기 때문에 시장에 나도는 ‘신라면’은 대다수(대부분) 밀수로 들여 온 것들”이라며 “담배밀수가 중단되면서 지금은 밀수꾼들이 ‘신라면’을 들여오는 것이 추세”라고 강조했다.
북한 당국이 지난 2002년 이후 중국기업들과 합작의 방법으로 수많은 담배공장들을 운영하면서 한때 장마당을 선점했던 고가의 중국담배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주요 밀수 품목이었던 중국담배의 판로가 막히자 밀수꾼들은 ‘라면’밀수에 몰리기 시작한 것, 이중에서도 단연 인기는 ‘신라면’이라고 한다.
봉지라면 하나에 2천 5백원이면 북한 노동자 한 달 월급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간부들과 부유층에서는 흔한 중국산 라면보다 기왕이면 남한 신라면을 먹자는 소비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말했다. 일반 주민들도 돈이 좀 생기면 남한 신라면을 맛보려는 욕구가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신라면을 돈라면이라고도 부른다는 것.
소식통은 “보통 라면이라는 게 중국산이 좀 눅다(저렴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서 “기왕이면 비슷한 가격에 질이 좋고 맛도 좋은 남한 라면을 먹겠다는 사람들의 심리도 있다”고 했다.
‘밀수로 장마당 수효를 다 채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소식통은 “요즘 국경에 사는 사람치고 밀수를 안 하는 사람이 어데 있겠냐?”면서 “이전에 장마당에 넘쳐나던 중국담배도 대부분 밀수로 들여 온 것들이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