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00 연안호’를 석방하면서 대남 유화책을 이어가고 있다. 남북이 적십자회담을 열어 추석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지난 28일, 연안호 석방을 발표하면서 ‘극적효과’까지 거뒀다는 평가다.
북한은 이달 들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초청해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 씨를 석방하고 12·1조치’ 해제와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 통보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특사 조문사절단’까지 파견하는 파격행보를 이어 왔다.
이 같은 북한의 행보는 연이은 미사일·핵실험 등의 군사적 도발로 정치·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과거식의 대외전략이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제재 목소리에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평화공세’로 급선회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대외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한데 이를 위해 우선 남북관계 를 활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150일 전투’를 비롯한 내부 경제 개선 노력이 계획보다 지지부진함으로써 남한의 교류․지원사업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이어진다.
이와 관련,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미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상황적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선전 매체들도 최근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9일 “북남공동선언들을 이행하는 데 당국과 민간이 따로 있을 수 없다”며 당국 간 대화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남북 당국간 회담을 먼저 제의하지 않을 방침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남북관계가 유화분위기인 건 사실이지만 비핵화 진전 없이 개선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유 씨 석방이나 연안호 송환, 12·1조치 해제,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등 북한의 최근 조치 등은 북한의 일방조치 등을 해제한 것뿐이라는 지적도 정부의 태도를 신중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원래대로’ 되돌렸을 뿐인데 여기에 정부가 먼저 ‘선(先) 비핵화’ 원칙을 허물게 될 경우 북한에 잘못된 ‘학습효과’를 전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조성된 화해국면을 마냥 외면하기는 어렵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를 모색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도 북한과의 관계개선 수위를 두고 조율이 한창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비핵화’와 ‘북한의 개혁·개방’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남북간 대화의 모멘텀은 이어나가는 유연함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이산상봉, 연안호 석방 등 북한의 잇단 행보를 보면 남북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원칙을 지키면서 유연함을 강조하고 있어 당분간 한반도는 안정적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핵폐기 약속이 분명하지 않는 한 미북·남북관계의 급변은 기대되지 않는다고 예상했다. 유 교수는 “과거 북한의 대외전략을 경험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폐기와 개혁·개방 의지가 분명치 않는 상황에서 현 제재국면을 급격하게 전환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