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이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표준시 변경을 밝혔습니다. 오는 8월 15일부터 평양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30분 늦추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1시간 단위로 시차를 두고 있는 국제 표준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대외무역이나 통신 등에서 상당한 불편이 예상됩니다. 물론 지금의 표준시가 일본 도쿄를 기준으로 한 건 사실이지만 이것이 일제의 잔재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궤변에 가깝습니다.
처음 우리나라가 표준시를 정한 건 1908년 4월 1일이었습니다. 그때는 국제 표준시의 기준인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보다 8시간 30분 빠르게 정했습니다. 서울이 위치한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1912년 일본 총독부가 도쿄를 기준으로 오늘의 시간으로 변경했습니다. 본국인 일본과 시차가 있다 보니 여러 모로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일제가 조선의 표준시를 강탈했다고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의 이승만 정부도 1954년 표준시를 다시 서울을 기준으로 바꿨습니다. 역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게 명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다보니 교역을 하거나 통신을 하는데 어려움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1시간 차이는 시간만 바꾸면 되지만 30분 차이는 분까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국제적인 기준에 맞게 바꾸면서 지금과 같은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1시간 단위로 표준시를 쓰는 건 일제의 잔재보다는 국제기준에 맞춰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이유로 김일성과 김정일도 기존 표준시를 사용했던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이번 표준시를 변경하면서 기존 시각을 쓰는 건 민족적 수치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기존 표준시를 쓰면 일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거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내놓았습니다. 결국 오랫동안 기존 표준시를 사용한 김일성이나 김정일도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됐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이런 정치놀음을 벌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해방 70돌이 되는 올해에 뭔가는 내놔야 하는데 그럴만한 업적이나 성과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표준시라도 바꿔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선전하기 위해 이런 꼼수를 부린 겁니다. 이건 김일성과 김정일만 친일파로 내몰고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만 띄워주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정은은 이런 허접한 놀음에 빠져 자기 위대성을 선전하기보다 인민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똑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청산은 표준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본보다 월등한 국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인민들의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는 점 명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