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일반 대학생들은 케인즈, 프리드만 알 수 없다”

▲ 김일성종합대학 성자립 총장(左)과 김용옥씨 ⓒ중앙일보

북한을 방문한 김용옥씨는 10월 8일자 중앙일보에서 김일성대 총장 성자립과의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이 기사에는 김씨가 “프리드만도 공부했는가?”라고 질문하자 성 총장이 “케인즈, 프리드만의 흐름이야 다 기초가 아닌가?”라고 답변한 것으로 나와 있다.

얼핏 들으면 북한의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이론이나 현대 사상에 관한 책을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중앙당 간부들이나 북한에서 특혜를 받는 사람들만 현대 사상과 관련한 외국서적에 접근할 수 있다.

김일성대를 다니다 탈북한 김명철씨(가명·32)는 이렇게 말했다.

“평양의 인민대학습당 4층에는 ‘비공개 도서실’이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 있는 외국서적들은 중앙당 간부들이나 특정한 사람들만 읽을 수 있다. 아마 성자립 총장도 그 ‘비공개 도서실’에서 케인즈나 프리드만의 이론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책이나 자료를 열람하는데도 특권층과 일반 대중들이 구분된다” 며 “북한의 일반 대학생들은 케인즈나 프리드만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1967년 김일성의 ‘5.25 교시’ 이후 이른바 ‘도서정리사업’을 통해 서양의 문학, 철학 등 고전이 대부분 불태워지거나, 먹이 칠해지거나, 페이지가 잘려나갔다. 이후 마르크스 관련 서적도 한동안 일반인들이 볼 수 없었고 연구가들이 주로 보았다.

이후 ‘도서정리사업’이 끝난 뒤 1984년부터 ‘평양 외국문출판사’에서 외국서적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서양의 고전문학, 철학 등이 다시 ‘복권’됐으나, 현대 경제학, 현대 사상은 당 간부나 일부 특권층들이 ‘비공개 도서실’에서만 열람할 수 있다.

김씨는 “북한에서 고전은 읽을 수 있지만 현대사상과 현대 경제이론에 대해서는 읽을 수 없다” 며 “국가가 선별하고 승인한 외국서적 외에는 볼 수 없다.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상과 이론은 철저히 배격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90년대 후반부터 북한 교육당국은 사회주의 경제이론과 주체철학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전경제학과 고전철학은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면서 “그러나 현대사상과 현대 자본주의 경제이론은 전공자에 한해, 그것도 상식적으로만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에 들어와 마르크스의 ‘자본론’, 엥겔스의 ‘포이에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신성가족’, 레닌의 ‘국가와 혁명’과 같은 고전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책들이 워낙 오래 된 것이어서 종이가 모두 누렇게 바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카네기 인간관계론’ ‘싱가포르의 번영’, ‘중국공산당 일대 비극 – 상강전투’ ‘데카메론’ 등과 같은 책은 다른 사람이 ‘비공개 도서실’에서 빌려 온 것을 몰래 보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문학작품의 경우에도 국가에서 승인이 된 것들만 번역 출판하지만 그래도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은 번역을 많이 해서 출판한다” 며 “대학에 있을 때 발자크, 푸쉬킨, 존 바이런, 하이네,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스탕달, 톨스토이, 뒤마, 빅토르 위고, 세르반데스의 소설 등 많은 외국도서들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고전을 제외한 현대소설들은 거의 읽은 기억이 없다” 며 “북한은 체제에 위협이 되거나, 자본주의에 대해 환상을 줄 수 있는 정보나 도서는 철저하게 차단한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북한은 최신 기술이나 정보자료에 대한 번역사업이 매우 미약하다” 면서 “대학생들이 논문을 쓸 때 참고하는 외국자료나 정보는 모두 낡은 것들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의 말에 의하면 한때 평양의 대학생들 속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가렛 미첼)와 ‘미국의 비극’과 같은 미국소설들을 읽는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1994년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평양을 방문하면서 김일성에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필름을 선물로 준 후 북한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미국소설들도 번역출판 되었다고 한다.

김명철 씨는 “이런 책들이 북한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당국이 출판을 허가했겠지만, 그 책을 읽은 대학생들은 미국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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