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천AG서 돌발행동?…”‘최고존엄’ 민감반응 가능”

2014 인천 아시안게임(AG)에 출전하는 북한 선수단 선발대 94명이 11일 오후 고려항공 TU-204편을 이용, 한국으로 입국했다.


북한은 15일 오후 5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리는 남자 축구 중국과의 경기로 이번 대회 일정을 시작하고, 이후 총 273명의 선수단이 입국해 내달 4일까지 경기 일정을 소화하게 된다.


북한은 제7회 대회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78년 방콕, 1982년 뉴델리, 1990년 베이징,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AG 게임에 참가했다. 북한은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면서 여러 ‘돌발 행동’을 보여 왔다.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참가한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역도 부문 3관왕인 김중일 선수는 도핑 테스트 결과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져 선수자격 금지조치와 금메달 3개를 모두 박탈당했다. 결국 이 사건은 AG 역사상 최초의 금지약물 복용으로 인한 메달 박탈 사례로 기록됐다.


이에 북한은 거세게 반발했고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소동 속에서 북한은 종합순위에서 한국에 밀려 ‘5위’를 기록했다.


다음 대회였던 1978년 방콕 AG에서는 북한의 선수가 아닌 ‘부심’이 사건을 만들어 냈다. 이는 다름 아닌 일본과 말레이시아 남자농구 경기의 부심으로 지명된 북한 라복만이 한국의 이재덕 주심과 함께 심판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경기를 ‘보이콧’ 한 것. 결과적으로 태국 출신 부심으로 교체되고서야 사건이 일단락됐다. 


북한은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1982년 뉴델리 AG 참여한 북한 축구 대표팀은 쿠웨이트와의 준결승전에서 2:3으로 패한 직후 주심을 ‘폭행’했다. 여기에 북한 응원단까지 그라운드에 난입해 난동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북한은 아시아 축구 연맹(AFC) 집행위원회로부터 2년간 국제 축구 대회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또한 북한은 정치적인 이유로 ‘AG 불참 카드’를 활용하기도 했다. 1986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서울 AG에 북한은 대회 참가 보이콧을 선언했고, 이에 동조한 베트남, 라오스, 몽골, 남예멘, 시리아, 캄보디아도 대회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1994년 히로시마 AG에서도 북한은 일본이 자국 선수단에 입국비자를 요구한다는 점을 이유로 대회에 불참했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열렸던 2002년 부산 AG에서 북한은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당시 북한은 18개 종목에 316명(선수 184명)의 선수단과 280명의 응원단을 파견했다. 이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에 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참가한 것이다.


북한의 부산 AG 참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남겼다. 일례로 대한사격연맹이 북측 선수단에게 연습탄 5만 발을 지원했는데 북한이 연습탄을 4만 발 이상을 남겨 이를 갖고 출국하다가 세관에 걸리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북한 응원단을 싣고 온  ‘만경봉호’는 강원도 원산까지 갈 기름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측에 채워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북한이 그동안 참가한 AG에서 여러 돌출 행동을 보여 이번 인천 AG에서도 북한을 중심으로 ‘돌발 사건’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북한 김정은 체제가 ‘최고존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일부 보수단체와의 충돌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데일리NK에 “북한이 여러 국제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면서 어느 정도 성숙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는 할 수 있지만, 체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거침없는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스포츠 교류 행사이니 만큼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면서 “북한의 ‘돌발 행동’에는 국제적인 관례와 원칙을 바탕으로 남북 관계의 특수한 상황을 염두하면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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