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민군, 군의소에서 하루 50만원을 벌다

북한은 헌법 제86조의 규정과 2003년 법제화한 전민군사복무제를 통해 제도상 의무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1993년 4월부터 김정일의 지시로 만 10년을 복무해야 제대할 수 있는 ’10년복무연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남성은 10년, 여성은 7년이다. 한국 일반 사병들의 복무기간에 비하면 북한 남성군인은 8년 정도 더 긴 군생활을 하게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국가 간부 등용 대상에서 군사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간부 후보 명단에도 오를 수 없게 했다. 군사복무 경력과 대학졸업증이 있어야만 간부로 발탁될 수 있게 된 것이다.


16세에 중학교를 졸업하면 초모사업(입영)대상이 된다. 신체검사를 마치고 신병훈련소에 입소하면 매우 엄격한 기율 속에서 힘든 훈련을 받게 된다. 이 때까지는 모두들 죽기 살기로 훈련에 임한다. 하지만 군 생활을 시작해 해가 거듭할수록 군기는 빠지고 집 생각만 나게 된다. 


남한 병사들은 2년이 못된 시간을 보내면 제대할 수 있지만 북한 병사들은 집에 가기 위해 10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군복무 후반기로 갈수록 의욕은 상실되기 마련이다. 


제대하는 날만 기다리는 이런 만기생 때문에 다른 군인들의 군기마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이들을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본다. 그래도 부대 병사 중에 제일 우두머리격인 만기생들에게 대놓고 불만을 이야기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군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군생활을 통해 입당까지 했는데 지나치게 군기율을 어기면 탈당 또는 생활제대를 당하기 때문에 눈치것 요령을 피우게 된다. 그래서 이 말년병사들이 선호하는 곳이 바로 군의소(의무대)다. 


북한군 어느 군의소에 가도 건강한 육체에 눈이 빠르게 돌아가는 ‘환자’들이 보통 입원환자의 10%는 된다.


몸도 아프지 않은 이들이 군의소에 입원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대대 군의관에게 찾아가 “군의동지, 저 요즘 위가 좋지 않아 밥을 먹지 못하는데 좀 봐 주십시오”라고 청한다.


그러면 군의는 “이새끼, 멀쩡한데 어디가 아퍼? 또 꾀병 부리고 있네”라면서 눈을 흘긴다. 하지만 만기생들은 군사복무가 거의 10년째여서 군의관에게 익숙할대로 익숙한 사람들다. 


“군의동지, 이거 진짜 군사복무 10년에 병신 돼서 집에 가야겠습니까? 나도 치료 좀 하다 갑시다” 이런 식으로 더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면서 평소에 대대 군의관의 성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솜씨 있게 ‘작업’에 들어간다.


“군의동지, 담배 좀 피워보십시오” 하면서 준비해 간 외제 담배 네 댓 곽을  꺼내놓는다. 또는 “저녁에 한잔 합시다”는 말도 남긴다. 일부 만기생들은 군의관의 처가 뇌물을 좋아하는 줄 알고 있어 날이 어두워진 후 집으로 찾아가 쌀자루나 닭 모가지를 비틀어 쥐고 슬쩍 건네준다.


어쨌거나 이쯤 되면 군의관은 자신도 그런 시절을 거쳐본지라 모른척하고 “야, 위생병, 얘 이거 군의소에 가서 좀 놀다오겠단다. 데리고 가라 ”하면서 위생지도원에게 신상을 넘긴다. 


대대 군의관이 연대나 여단 군의소에 가게 해주었으니 다음 행동은 자기 몫이다. 능력껏 군의관들과 사업해 입원하기만 하면 얼마동안은 실컷 놀 수 있다.


대체로 대대 군의소 군의관들은 직접 병사들과 함께 있으므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생활이 괜찮지만 여단이나 연대 군의관들은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직접 담당한 군인들이 없기 때문에 환자들이 챙겨주지 않으면 부대에서 공급하는 것 외에 따로 얻는 부수입이 없다. 만기생들은 바로 이틈을 노린다. 군의관들의 넉넉지 못한 사정을 이용해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일단 대대 위생지도원을 따라 군의소에 가면 친구들로부터 소개받았거나 아니면 이미 전에 알고 지내던 군의관을 찾아간다. 아니면 진료를 담당한 군의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는 ‘비위’좋은 친구들도 있다.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규정을 어기는 것이므로 군의관들이 처음부터 그들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대대에 돌아가서는 재미가 없고 보는 눈들도 많아 어떤 수를 써서라도 군의소에 입원하려고 애쓴다. 


만기생들이 뇌물공세에 온갖 비위를 부려가며 연대 군의관에게 달라붙으면 군의관들도 결국 “군의소에 있는 동안 (문제가) 제기되면 안 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입원시켜준다.


입원에 성공한 만기생들은 군의소 안팎을 자기 세상처럼 여긴다. 제일 우두머리에 상하관계가 철저한 군에서 감히 상급(만기생)을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린 군인들은 이들을 제압할 어떤 노력도 하기 어렵다. 


호실에서 제일 눈썰미 있는 신입 환자는 당연히 만기생의 ‘연락병’이 된다. 온갖 자질구레한 심부름은 다 들어 주면서 심지어 만기생들이 지루함을 참지 못해 근방에 몰래 사귀어 놓은 애인에게까지 심부름을 다녀야 한다.


일부 만기생들은 군의소를 거점으로 제대준비를 하기도 한다. 이들의 제대준비란 다름이 아니라 열심히 ‘작업’해 한푼이라도 버는 것이다. 


낮이면 ‘연락병’하나를 거느리고 슬금슬금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주변을 빙빙 돌면서 미리 염탐을 한다. 그러다가 밤이 되어 취침시간이 되면 군의나 간호사들의 점검이 끝나기 바쁘게 군의소 담장을 뛰어넘어 낮에 봐두었던 마을로 찾아간다.


담이 큰 만기생은 온 가족이 여행 가고 없는 빈 집에 들어가 TV나 녹화기, 녹음기 등 큰 물건들을 도적질 한다. 소나 돼지 등 짐승을 끌고와 팔기도 한다. 들키면 군의소에서 쫒겨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까딱하면 출당에 생활제대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한다. 


2008년 12월에 입국한 탈북자 임준식(28) 씨는 “나도 제대 말년에 하루하루가 일년처럼 느껴졌고 제대 전에 돈을 좀 마련해놔야 한다는 조바심에 ‘큰 작업’도 여러 번 했다”고 추억했다.


함남도 덕성군에서 군사복무를 하던 임 씨는 제대하기 몇달 전 군의소에 입원한 같은 만기생과 부대에서 30여리 떨어진 염소목장으로 찾아갔다. 이 곳 염소목장은 354훈련소 목장으로 선물(김정일이 부대에 영양보충 용으로 지원해준 가축)염소가 1000마리나 되는 큰 목장이었다.


제대준비를 위해 두 만기생이 통 크게 세운 ‘작전계획’은 염소우리 뒤쪽 흙벽을 허물고 염소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야심한 밤에 목장을 찾은 두 사람. 이들은 염소우리 뒤쪽 담에 구멍을 내고 염소 한 마리를 끌고 나왔다. 흙벽의 구멍을 좀 더 키우니 다른 염소들이 모두 따라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많은 염소들이 나오면서 어떻게 울음소리 한마디 없었냐는 것인데 사실 염소나 양, 소는 밤에 울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 만기생들은 바로 이 점을 이용했다.


끌고 나온 20여마리의 염소들을 다시 30리 거리를 끌고 나와 이미 말이 통한 민가 주민에게 보관을 부탁한다. 그리고 다음날 가축장사꾼에게 마리당 1만 5천∼2만 원을 받고 팔았다. 큰 염소(30㎏ 좌우)는 마리당 3만 원을 받았다. 


하룻밤에 50만 원의 돈이 생긴 것이다.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해 군의소들에서 ‘만성병’환자들은 ‘축출대상’으로 몰기도 하고 군기강을 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이들의 ‘군의소 진입작전 및 귀향자금 마련’은 해마다 반복돼 골칫거리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