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권 개선,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최근 언론을 통하여 북한 당국의 정치범에 대한 무자비한 인권유린행위가 보도되고 있다. 북한 내 정치범들은 자의적인 구금과 고문, 여성학대, 공개처형 등 반인륜적 처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북한은 2009년 헌법개정을 통하여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것임을 밝힌 바 있으며, 2010년 신년사에서도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함에 따라 북한의 인권문제가 점차 개선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되었으나 실제로는 어떠한 진전도 보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정치범에 대한 인권유린의 역사는 1958년 평안남도 북창지역의 정치수용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의 인권 실태는 북한체제의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가 급증하면서 국제사회에 서서히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후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 미국․일본과 같은 개별국가, 수많은 NGO 단체를 중심으로 하여 북한 인권에 대한 권고조치 및 구체적 입법마련을 위해 적극 노력해 오고 있다.

그런데 오랜 기간에 걸친 이러한 노력들이 현재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 당국이 인식하고 있는 ‘인권’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있어서 인권개념의 특수성은 첫째, 천부적인 자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의「사회주의 헌법」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따라 인정되기 때문에 집단의 이익에 우선되는 개인의 권리는 인정될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하면, 북한에서 인정되는 인권이란 체제유지에 위협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 당국이 시혜적으로 부여하는 권리만을 말하며 생명, 인간의 존엄과 가치 같은 천부적인 인권은 체제유지를 위해서 언제든지 부인할 수 있는 실정법 상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일이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세계여론에 대하여 “인민정권이 인민대중의 리익을 침해하는 세력과 요소에 대하여 독재를 실시하는 것은 인권유린이 아니라 철저한 인권옹호입니다 …… 사회주의정권이 적대분자들에게 적용하는 권력행사를 마치 인권을 유린하는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소동입니다”라고 언급한 사실은 북한의 인권이라는 것이 체제수호 범위 내에서만 인정되는 권리임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우리 인민정권의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키자’(1992. 12. 21),『김정일 선집』13, 1998).

둘째, 헌법상 보장되는 권리는 모든 인민에게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범위의 인민, 즉 공민에게만 인정되는 권리이다.「사회주의 헌법」제5장에서는 ‘공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표제 하에 공민에 대해서만 헌법상의 권리를 인정한다.


조선말 대사전에서는 공민을 “일정한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그 나라 헌법에 규정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공민이라는 용어가 인민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 범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북한의「공민등록법」에 따르면 공민이 재판소의 판결에 의하여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을 때 공민증을 회수하도록 하고 있으며 선거권 등 헌법상의 권리행사에 제한을 받게 된다. 또한 민족반역자와 반동분자는 공민이 될 수 없다.


이들은 북한의 국적을 보유하지만 공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요컨대 북한의 인민이지만 공민이 아닌 자는 헌법상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

이러한 점을 전제하여 북한의 정치범, 특히 탈북을 시도한 후 북한에 강제송환된 사람들의 법적인 처분에 대해서 살펴보자. 북한 형법에서는 ‘조국반역죄’라는 조항을 두어 “조국을 배반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쳤거나 투항한 경우”에 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탈북을 시도한 자가 노동교화형의 처분을 받았을 경우에는「공민등록법」에 의해 공민증을 회수당하고 ‘반동분자’로 낙인 찍히게 되어 공민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따라서 이들은 공민으로써 누릴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며 천부적인 권리 역시 인정되지 않는 북한 법질서 내에서는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이들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체포․구속을 당하며 간단한 약식재판절차를 거치거나 또는 재판절차를 생략한 채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되거나 공개처형을 당하게 된다.


이처럼 ‘인권’개념에 대하여 국제사회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인식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에게 개선을 요구하는 인권은 천부적인 자연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북한이 인식하는 인권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에 대해서만 북한당국이 시혜적으로 인정하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이 옹호하는 인권은 인민들의 인권이 아니라 인민의 원쑤들의 인권이며……”라는 김일성의 말은 이와 같은 인식의 차이를 명확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인민정권을 더욱 강화하자’(1977. 12. 15),『김일성 저작집』32, 1986). 북한의 입장에서는 정치범에 대한 인권보장 요구가 ‘아무런 권리가 없는 자에게 권리를 인정하라’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자(死者)에게 생명권을 보장하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약 15년 동안 진행되어 온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한 이유는 인권 개념에 대한 상호 인식차이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한인권 문제 해결을 위하여 동원되고 있는 경제적인 제재와 봉쇄, 인권실태의 폭로를 통한 국제사회의 비난 등이 현실에 있어서 그나마 실효성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인권의식이 변화되어야 비로소 북한인권 문제해결을 위한 진지한 방안이 강구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NGO의 활동과 국제적 차원에서의 해결방안을 지속적으로 유지함과 더불어 우리 정부차원에서도 북한의 인권에 대한 인식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의 인권개념이 50여년 이상 지속되어온 가치관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무리한 요구를 통한 전격적인 인식전환을 요구하기 보다는 대화와 협의를 통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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