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인권문제가 대두되지 않도록 내부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문제를 제기할 만한 심각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자칫 대화분위기가 깨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 프리랜서이자 북한전문매체 ‘아시아프레스’의 대표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56) 씨는 최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데일리NK와 만나 “보통 북한에서는 2월 16일 광명성절이 지나면 통제가 조금씩 약해지는데, 지금도 계속 엄청 심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며 “지금의 분위기를 깰 수 있는 요소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인권에 관련한 사건사고가 발생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거나 남북·북미대화의 테마 중 하나로 인권문제가 부상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 가까스로 조성된 대화 분위기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를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시마루 대표는 북한인권이 김정은의 권위 및 북한 정권의 정당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북한으로서도 간단히 인정할 리 없고,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위대한 김정은 원수의 영도 아래 인민 대중 중심의 인권이 가장 보장된 사회’라는 논리로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권비판을 인정할 수 없고, 오히려 더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핵문제에서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다음엔 인권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김정은은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대화국면이 지속되는 동안은 탈북 등 인권에 관련된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북한을 관찰해왔다. 북한이 국면전환에 나선 이유를 어떻게 보나.
“2016년도와 2017년도에 북한은 핵미사일고도화에 집중했고, 2017년도 말에 결국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핵무력을 완성하고 핵보유국으로 대화에 나서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태영호 전(前)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2016년 7월에 망명해 그 해 12월에 한국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다. 그 때 이 같은 북한의 전략을 그대로 설명했다. 또 하나는 생각보다 중국이 강하게 제재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빨리 국면전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그 계기로 삼는 전략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북한 내부의 전략도 있었지만, 제재가 생각보다 강해 국면전환을 서둘러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굉장히 속도감 있게 국면이 전환되고 있다. 그만큼 북한이 절박했다고 볼 수 있을까.
“북한 입장에서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이라도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평창올림픽참가, 김여정 파견, 대북특사 초청까지 시간을 매우 앞당겼다고 본다. 작년 말까지 북한은 사면초가였다. 중국과 일본, 미국, 한국이 다 북한의 입장에 서지 않고 있다. 북핵 25년 역사 중에 처음으로 주변 국가들이 일치해서 강한 압박에 나섰다. 그래서 북한은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마침 문재인 정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북한도 어느 정도 양보했다고 본다. 김정은이 직접 나서는 것은 굉장히 큰 카드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을 앞당겨야 하기 때문에 수뇌회담 카드까지 한꺼번에 꺼냈다. 이런 국면을 만든 것은 역시 문재인 정부의 아주 강한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실패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점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평가해줘야 한다.”
-현재 평양의 경제적 상황은 어떤가.
“평양은 겉으로 보면 크게 변화가 없다. 아는 일본 기자가 3주 전 평양을 다녀왔는데, 상점에 물건이 빠진 것도 아니고 차 운행이 줄어든 것도 아니라더라. 그런데 사실 외국인이 보는 것만으로는 다 알 수 없다. 살아봐야 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북한 외화벌이 회사가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 우리 취재파트너들의 조사에 의하면, 예를 들어 수산물 같은 경우에는 청진 등 동해에서 잡아 나진이나 신의주를 통해 중국에 보낸다. 평양에 본사를 둔 무역회사들은 (함경북도) 청진, 라진, 무산, 회령에 현지사무소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거의 문을 닫다시피 됐다.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군총정치국 산하 강성회사 등의 무역회사 건물을 창고로 임대하고, 직원들도 벌이가 없으니 회사차를 가지고 운수업을 하고 있다. 아마 직격탄은 평양본사가 받았을 것이다. 결국 평양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권력주변에서 외화벌이 했던 조직이나 기관, 기업소도 굉장히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대북 제재가 일반 북한주민보다 김정은과 그 주변에 더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인가.
“내부 취재협력자들에게 북한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물어보고 있는데, 지난 1년 동안 물가가 아주 안정세다. 생각보다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시장도 잘 돌아가고 장사로 먹고 산다는 것이다. 북한 시장의 제재에 대한 저항력이 생각보다 괜찮다. 오히려 김정은의 통치자금, 군대, 당, 보안 등의 권력기관, 권력 주변에서 돈벌이 했던 사람들이 직격탄을 맞았을 것이다. 특히 군대가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름이 비싸서 물자를 운반하는데 목탄차나 소달구지를 쓰고 있는 부대까지 있는 형편이다.”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충성도는 어떤가.
“개개인에게 물어보면 정치, 정권, 집권자에 대한 관심자체가 정말로 희박해졌다고 느낀다. 기대해봤자 아무것도 얻는 게 없고, 정권이 하는 것과 자신들의 삶이 관계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래서 핵, 미사일, 평창올림픽 참가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직장과 학교, 지역에서 행해져 온 생활총화와 강연회에도 돈을 내고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조직 생활의 형식화가 현저하다. 그렇게 보면 충성도가 떨어졌다고도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취재협력자들은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도 한다. 김정일 시대에는 김정일 개인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김 씨 일가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다고 느낀다. 정치는 결과가 중요하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질 않으니 ‘정치는 능력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왜 그 가족만이 독점하고 있는가’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은 핵 때문에 고생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핵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력을 갖고 미국의 침략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국의 선전을 일정 정도 받아들이면서도 핵을 개발하는데 쓰는 돈을 인민생활에 쓰면 좋겠다는 게 자연스러운 생각이지 않나. 제재가 시작되면서 경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을 사람들도 느낀다.”
-북한은 아직 남북회담이나 북미회담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이야기해주면 믿지 않는다. 오히려 ‘설마 핵을 포기하겠나’라는 의문을 갖는다. 김정은이 국제사회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주민들은 ‘제재 때문이 아니냐’라고도 하는데, ‘핵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고 제재가 완화되면 좋다’는 반응도 나왔다. 비핵화 이야기가 확산되면, 경제일꾼과 주민들 사이에서 ‘빨리 포기해버렸으면’ 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이런 반응은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는 무서운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핵이 필요없다는 거니까. 그래서 지금 북한 정권은 김정은의 위신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핵은 목숨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포기하겠다? ‘젊은 놈이 미국과 남조선을 이기지 못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선전을 통해 여론을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다. 남북대화, 북미대화를 국내에 공개해도,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업적과 승리라고 선전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즉시 전면포기는 어렵겠지만, 부분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지금 이렇게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핵개발에 자신감이 있다는 거다. 핵을 없애도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나. 기술과 물자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만들 수도 있다. 기술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복귀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시간 벌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리는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고 본다. 100%는 아니더라도 90%까지는 핵을 가졌다는 자신감이 있고, 그것을 주변에서 위협으로 여기니까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시간을 버는 게 아니라 시간을 앞당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국면전환의 속도가 올라가지 않으면 제재의 영향이 갈수록 심각해져, 체제 유지가 곤란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급하게 움직인 것은 김정은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일본, 한국, 미국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김정은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단 트럼프 정권이 대북강경파 일변도로 된 것이 변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향후 예측은 어렵다.”
-최근 들어 북한의 대미비난이 줄었는데, 인권문제 지적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핵문제에서 혹시 어느 정도 합의가 되면서도 다음에 인권문제로 압박을 받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노동신문에서도 계속해서 인권탄압에 반발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정권은 자신의 체제를 ‘인민애로 가득한 인권천국’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유일영도체제인 북한에서는 영도자 무오류의 원칙이 있다. 김정은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국제사회의 인권비판을 체제로서 인정할 수가 없다.
보통 북한에서 2월 16일 광명성절(김정일 출생일)이 지나면 통제가 조금씩 약해지고 농사 준비에 들어간다. 그런데 지금 통제가 엄청 심하다고 한다.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에 열을 올리고, 복장과 머리 모양 등에 자본주의적인 경향을 철저히 단속하고, 북중국경에서 검문 및 단속도 지금까지 최고수준으로 실시하고 있다.
북미회담까지 이야기되는 상황에서 탈북과 병사의 망명, 인신 매매 등의 인권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평화’, ‘남북협력’ 무드를 만드는 것에 열심이지만, 인권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한국과 세계가 ‘그렇다. 북한인권의 심각함을 잊어는 안 된다’라고 분위기가 바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다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의 분위기를 깰만한 요소들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당분간 김정은 정권은 더욱 더 철저히 민중을 통제하고 공포정치를 이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