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권문제에 예민한 반응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최근 연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북 인권문제 제기에 비난.역공.해명 등 대응의 수위를 부쩍 높이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에도 미국 등의 인권문제 거론에 언론보도나 유엔 등 공식 외교무대를 통해 “체제 전복 의도”라거나 “사회주의 원수들의 ’인권’ 공세를 받아들이는 것은 독약을 먹는 것과 같다”며 지속적으로 반발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핵문제와 북미관계정상화 문제에서 양자관계가 긍정적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도리어 다른 이슈들에 비해 대미 비난 횟수가 과거보다 늘어나는 등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13일 논평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인권문제를 정치화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권 공세” 대상국을 선별하고 있다며 “미국의 인권공세는 세계를 미국화.서방화하려는 목적”이라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지난 9일엔 테러용의자에 대한 사전영장없는 도청을 허용한 미국의 해외정보감시법을 가리켜 “인권유린”이라며 오히려 미국의 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역공했으며, 8일에도 미군의 “인권유린 행위”를 비판했다.

평양방송도 11일 미국의 반테러전을 비난하면서 미국을 “인권유린의 주범”이라고 공격했고 10일엔 “세계 모든 나라에 꼭같이 맞는 유일한 인권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방송은 지난 3일에도 대북 인권문제 제기를 “다른 나라의 사회정치 제도를 와해.붕괴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날조”한 것이라며 “특히 우리나라에 대한 적들의 인권공세는 그 집요성과 악랄성, 지구성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의춘 외무상은 지난 4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인권 및 문화다양성’에 관한 비동맹운동(NAM) 장관급 회의 연설에서 “인권옹호를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고 타민족의 운명을 농락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5일에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정보기관의 간첩활동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는 자리에서 “오늘 적대세력들이 각종 모략단체와 비정부기구들까지 발동을 해서 인권분주탕을 피우고 있다”며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자주적인 나라들에 대한 내정간섭행위이고, 제도전복을 위한 도구이고, 침략전쟁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의 이같은 대응은 미국이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 북미관계 진전 속에서도 완전한 관계정상화를 위해서는 인권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를 축으로 북미관계가 풀려가고 있지만 앞으로 미국쪽에서 인권문제를 공개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를 견제하기 위해 사전포석을 쌓고 있다는 관측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7일 호주 시드니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의 하나로 열린 ‘재계 정상회의’ 연설에 앞서 배포한 연설문에서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주변 민주국가들의 국민들과 같은 자유를 향유하는 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북한의 민주화와 자유화를 지원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나 미 의회 안팎의 여론을 감안할 때 북미관계정상화실무그룹회의가 열릴 때마다 미국측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겉으로는 인권문제 제기에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향후 관계정상화 협상이 진전되면 미국과 인권문제에 대해 일정한 수준에서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화.민주당을 막론하고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워낙 완강한 것을 북한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 영국 등 유럽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인권문제 대화에 제한적인 수준에서 응한 선례도 있다.

북한은 2004년 9월 영국 각료급 인사로는 처음 방북한 빌 라멜 영국 외무차관에게 강제 노동교화소의 존재와 인권문제에 낮은 순위를 두고 있음을 최초로 인정하는 등 부분적으로나마 인권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2001년 5월에는 요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의 방북 때 처음으로 인권대화에 응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같은 해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과의 ’인권대화’에 대표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북한은 위조지폐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만해도 강하게 부인했지만, 그후 미국측의 문제제기에 관련자 처벌 등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최근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서 “다수의 연루자들”을 체포했다고 미국측에 통보한 것으로 미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이 핵문제를 통해 미국과 관계개선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응 기조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잡을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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