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제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 함경북도 무산의 장마당 모습

최근 북한의 내부변화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몇 년 만에 시범케이스로 재개한 회령 공개총살(3월 1, 2일) 이후에도 주민들의 강타기(탈북)는 줄어들지 않고, 온성에서는 한 개 인민반(30가구 정도)이 탈북하거나 장사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어린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꽃제비 길로 나가는 바람에 동네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생겼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뛰어 고위층도 장사길로 발벗고 나섰다. 지금 북한에서는 직장에만 나가는 사람들을 ‘일등 머저리’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월급을 받아봐야 쌀 2kg 남짓밖에 사지 못하니 장사가 아니면 먹고살기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남한의 상품이 중국을 통해 들어가는 국경지역에는 평양에서 직접 물건을 떼러 출장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기자가 최근 연길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여성에 따르면 “이제 카메라가 달린 한국제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고 한다. 이 여성에 따르면 “이제 주민들의 생활이 위험한계를 벗어나 통제불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여성의 딸은 이미 한국에 들어가 있다. 한국으로 먼저 간 딸을 찾아 탈북한 이 여성의 수중에는 중국 돈 6천 원과 미화 2백 달러가 있었다. 이 여성은 “고향에 있는 다른 식구들은 자기가 먹을 만큼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남조선에 있는 딸이 몸을 풀었다(해산)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 탈북했다”는 것이다. 현재 남한과 북한의 지역이 휴대폰으로 통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도 거의 다 알고 있다”고 한다.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

회령에 사는 장순호(가명 37세) 씨는 연길에 있는 삼촌집에 장사차 들어왔다. 다음은 장씨와 나눈 대화다.

-회령이 고향이라면 혹시 이번 3월 1일과 2일에 진행한 공개처형에 대해 알고 있는가?

그날 공개처형을 나도 나가 보았다. 그날 사형 당한 사람들은 회령에서는 별로 알려진 사람들이 아니다. 크게 노는 사람들은 다 (권력기관을)끼고 하기 때문에 무사하고, 그 사람은 여자들이나 몇 명 소개해주고 얼마 벌지도 못하고 그렇게(사형) 됐다.

그때 같이 재판받은 사람들은 다 노동자들이고, 체포된 다음에 밖에서 힘(빽) 써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불쌍하게 죽었다. 공개총살은 2000년 전까지는 많이 하다가 뜸해졌는데, 작년 말에 비(非)사회주의 그루빠가 한 석 달 내려와 검열하더니 시범케이스로 걸렸다. 회령과 국경지대에는 그런 경우(인신매매)가 많은데 그 사람들만 재수없이 걸려 죽었다.

-공개처형이 있은 다음에 사람들이 무서워하던가?

사람이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그런 걸 무서워하겠는가. 내가 올 때도 여러 명이 강타기(탈북) 하다가 잡혔는데, 배가 고프니 방법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김정일이요, 당이요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 공포를 심어주느라고 총소리를 울렸지만 사람들은 돌아서서 또 중국으로 넘어갈 기회만 찾는다. ‘오직 돈밖에 믿을 게 없다’는 사상만 들어찼다.

-도강하는 사람들을 보안원들이 붙잡지 않는가?

보안원들도 자기네가 잘 아는 사람이면 죽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기 지방사람들이 죽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전번 그루빠는 중앙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온성이랑 무산이랑 국경지대에는 강타기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 집 건너 한 사람씩 없어졌는데 어떻게 다 잡아들이겠는가? 너무 많아서 처리를 못한다. 뭐 온성 쪽엔 한 개 인민반이 다 없어졌다고 하던데….

보안원과 보위원들도 강타기 나간 사람들의 집을 찾아 다니면서 쩍(툭)하면 “담배 없소? 돈 없소?” 하며 자꾸 뜯어간다. 어떤 때는 보안서에서 공사를 하는데 지원을 좀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 돈 백 원을 주면 막 좋아한다.

-고위층들도 장사를 하는가?

고위층들도 돈벌이에 눈이 새빨개서 돌아친다. 자기도 그만두면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임기 기간에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그것만 생각한다. 내놓고 장사는 안 해도 중국 화교들이나 돈 잘 버는 장사꾼들을 끼고 보호해주는 식으로 돈을 번다.

“남조선 사진기 달린 휴대폰 쓴다”

▲ 휴대폰으로 통화 중인 북한 여성

-요즘 장마당 형편은 어떤가?

지금 회령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그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편이다. 돈 있는 사람은 많고, 없는 사람들은 없다. 문제는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통에 백성들 살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우리처럼 장사하는 사람들은 달러 시세 봐서 장사하면 벌이가 꽤 되는데, 집에서 돼지나 키우고 장사를 못하는 사람들은 벌써 먹을 게 떨어져 아우성이다. 2002년까지는 꽃제비들이 없어졌는데 지금 또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난의 행군’ 때 꽃제비들은 다 죽고, 지금 생기는 꽃제비들은 네댓 살 안팎의 꽃제비들이다.

-사람들이 직장 안 나가고 장사만 해도 되는가?

공장이 다 멈추었다. 일 나가도 쌀도 안 주고, 돈도 안 준다. 그래서 요즘 ‘일등 머저리’가 뭔지 아는가? 직장 나가는 사람이 일등 머저리다. 직장에 이름만 걸어놓고 한 달에 자기가 반드시 일해야 하는 몫(‘8.3’이라고 한다)을 돈으로 때우는데, 북한 돈 이천 원만 내면 잡아가지 않는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이 잘 사는줄 아는가?

남조선이 잘 산다는 걸 사람들이 다 안다. 옷도 식품도 모두 남조선제를 좋아한다. 옷은 평양에서 온 장사꾼들이 많이 사가는데, 그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와서 물건을 통째로 사간다. 남조선제 격자지(체크무늬) 셔츠와 면바지는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사간다.

-‘메이드 인 코리아’ 상표가 붙으면 안 된다고 하던데?

중국 연변지방의 상품도 조선글로 쓰니까 구분이 안 된다. 그러나 상표에 ‘서울’이나, ‘부산’ 같은 공장 이름이 들어간 물건은 상표를 잘라버리고 판다. 또 상표가 있어도 일 없다. 시당 조직비서 아들도 남조선제만 입고 돌아다니는데…

그리고 쌀포대, 강냉이 자루 같은 것은 남조선제가 너무 많아 집집마다 다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조선에 쌀이 남아서 북조선에도 지원한다고 부러워한다.

-북한에 중국제 휴대전화가 많이 들어와 있는가?

우리 동네도 휴대전화가 많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중국 화교들만 낡은 ‘노키아’를 가지고 와서 시뜩거렸는데(폼잡았는데), 이제는 조선 사람들이 남조선제 사진기 달린 핸드폰을 쓴다. 남조선에 있는 사람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면 열어놓고 전화를 몰래 한다.

며칠 전에도 내가 알던 사람이 핸드폰 탐지기에 걸려 잡혀갔다. 그래서 전화기를 꺼두었다가 전화할 시간이 되면 문을 다 잠그고 몰래 이불 속에서 통화한다.

중국 옌지 = 김영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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