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산가족 恨마저 돈벌이로 이용하려 드나

북한의 제의로 1년 만에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양측 간 장소문제가 합의되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남북은 지난 17일 실무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내달 21일부터 27일까지 갖기로 의견접근을 이뤘다. 하지만 24일 열린 접촉에선 상봉 장소를 놓고 충돌했다. 우리 정부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를 제안했고 북측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와 관련,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5일 “남측은 지난번 접촉에서 쌍방이 합의한 상봉날짜와 명단교환날짜 등을 모두 뒤집으며 늦잡자고(연기하자고) 하는가 하면 상봉장소 문제를 전제조건으로 내걸며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합의서를 채택할 수 없다고 고집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금강산지구 내 이산가족면회소를 상봉장소로 하는 문제를 관계자들 사이에서 협의하자고 하자 남측은 면회소 주장을 철회하고 상봉장소를 다른 곳으로 하자고 하는 등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산가족면회소는 공식적으로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작년 상봉 당시 사용한 바 있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 면회소 상봉 거부에 우리 측은 북측이 생각하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지만 ‘금강산관광을 우선 재개하라’며 생떼만 쓴 것으로 알려졌다.



생각해 보면 북한의 이런 태도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북한은 지난 10일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하며 “올해에도 이날에 즈음해 흩어진 가족, 친척의 상봉을 금강산에서 진행하자”고 밝혔었다. 구체적 표현은 없었지만 이때부터 북한은 ‘금강산관광 재개’를 염두에 뒀을 게 분명하다.



‘금강산관광 재개’ 뿐만 아니라 북측은 “이번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금강산 상봉을 계기로 북남 사이의 ‘인도주의 협력사업’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북한 수해를 계기로 논의가 활발해진 대북 인도적 지원의 확대를 기대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금강산관광’ 문제는 북한으로선 꼭 해결해야만 하는 시급한 사안 중 하나다. 안정적인 외화벌이 창구였던 금강산이 2008년 7월 고(故)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잠정 중단되면서 연간 수백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놓치고 있는 상황이다. 



심신이 쇠약해진 김정일이 체제와 정권을 이 만큼이나마 연장할 수 있는 원천은 바로 ‘달러’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화벌이를 위해서라면 인민들을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중동 건설현장 노동자로 내몰아 몇 푼 안 되는 임금까지 착취하는 게 김정일이다. 그런 그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통장에 꼬박꼬박 자동 입금되는 금강산 창구를 포기할리 만무하다.



실제 북한은 금강산관광을 통해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약 150만 달러와 2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2008년에도 피격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약 120만 달러를 벌어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이 같은 바람과는 달리 우리 정부는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정부는 피격사건 이후 진상규명, 재발방지책 마련,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완비 등 ‘3대 선결과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와 관련,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27일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은 전혀 별개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인도적 사안인 이산상봉 문제를 정치적 사안과 결부시키려는 북한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피격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은 단순한 남북경협 차원이 아닌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됐다. 북한이 스스로 피격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내놓지 않는다면 금강산관광 재개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제 ‘금강산관광을 재개’라는 억지 주장은 이쯤에서 접고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의 성실한 태도변화가 있길 바라본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보인다면 우리 국민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작년, 남북 각각 100명의 이산상봉을 선심 쓰듯 내놨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대한적십자사에 신청한 사람만 12만8천여 명이나 된다. 그나마 이 중 4만4천여 명이 고령으로 이미 사망했다. 매년 고령화로 인해 3천여 명의 이산가족들이 사망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 간에 가장 절실하고 인도적인 사안이다. 100명, 200명 씩 만나는 것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이른바 ‘광폭정치’가 가능하다면 한 번에 1~ 2천 명 씩 통 크게 해보자. 그게 정말 ‘통큰정치’다.


이제 내달 1일이면 남북 당국자들이 다시 만나 상봉장소 문제 등을 놓고 접촉을 벌일 예정이다. 남북 모든 이산가족들의 시선도 이곳으로 모아질 것이다.


평생 이산의 고통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에겐 얼굴 한 번, 손 한 번 만져 보는 게 소원이다.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이산의 고통이다. 이산상봉이 꼭 성사돼 가족들의 한(恨)이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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