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의약품도 자력갱생?… “병원서 자체로 제조·사용하라”

평양제약공장
평양제약공장. / 사진=조선의오늘 홈페이지 캡처

북한이 심각한 의약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에 약을 자체 생산해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뒤늦게 전해졌다. 이에 설비와 원료가 없는 상황을 외면한 비현실적인 지시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2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지난 5월 말 보건성이 각 도, 시, 군 병원에 약품을 자체로 제조해 사용하라는 지시문을 내렸다”면서 “병원에는 약들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지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의약품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 등 의료 기관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물적·인적 기반이 상당히 붕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난으로 인해 제약설비구축, 원료의약품 개발, 제약 전문가 양성 등에 대한 재투자를 못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북한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만년제약공장, 토성제약공장 등을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에 부합되게 현대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의약품의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국경이 폐쇄되면서 북한 내부는 심각한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북한 주민은 치료제가 상황에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는가 하면 항생제 등 약값이 폭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관련기사 : 北, 의약품 부족 심각… “생명 위협 느끼는 경우도”)

이와 관련, KDI는 지난 5월 발간한 북한경제리뷰에서 북한의 의약품 대중국 수입액이 전년 동기 대비 13.23% 감소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설비와 원료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당국이 뚜렷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채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만 내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소식통은 “정부의 지시는 전문공장에나 있는 반응장치 등 설비, 기구를 병원 자체로 제작해 설치하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면서 “때문에 병원 담당자들이 어떻게 할지 몰라 막막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설비가 없는 병원에서 합성공정이 복잡하고 높은 제약기술과 특수한 반응장치 등을 요구하는 약을 자체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며 “당국이 현실성 없는 지시만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약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임상시험, 약품 개발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연구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설비가 필요하다.

이어 소식통은 “설비가 된다고 해도 국내에 없는 원료와 시약도 문제”라면서 “원료를 국산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필요한 약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제약 시설 미비와 원료의약품 확보 어려움으로 각 병원은 양약보다는 고려약을 제조하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고려약은 북한 내 약초들을 이용해 만드는 한약과 유사한 약이다. 북한 당국은 원료 확보가 용이한 고려약 생산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면서 의약품 확보 통로를 다변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설비와 원료 부족을 겪는 북한 의료기관들도 만들기 용이한 고려약을 생산해 당국의 제시한 목표량을 맞추려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약은 백신이나 항생제 같은 필수 의약품을 대체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전문 시설이 아닌 곳에서 약을 생산할 경우 약이 정확히 제조되지 않거나 오염물질이 유입될 수 있어 주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