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위안화(元) 효과’로 경제회복 노리나?

11.30 화폐개혁 이후 1년여간 북한 당국의 경제 정책은 갈지자를 걷는 듯 혼란스러웠다.


확산일로에 있는 ‘시장화 흐름’을 잠재우고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시행됐던 화폐개혁은 예상을 뛰어넘은 물가폭등에 직면했고 2010년 강성대국 건설을 앞두고 경제분야에서 국가주도권을 복원하겠다는 목표도 껍데기뿐인 구호로 전락했다. 


북한 당국의 정책이 주민들의 반발에 막혀 좌절된 것 역시 초유의 사태로 기억될 만 하다. 이를 두고 북한 내부에서는 “총구(북한 당국)가 달러(시장)와 싸움에서 졌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 北당국, 화폐개혁 단행 3개월 만에 ‘백기’ 투항


북한 당국은 지난해 11월 30일 신구화폐 교환비율을 ‘1대 100’로 하는 화폐개혁 및 시장폐쇄·외화사용금지·가격통제 등 일련의 조치를 동시에 단행했다. 그러나 구화폐 교환 한도액의 제한 및 시장 활동의 제한은 시장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대다수 주민들의 생활을 크게 교란시키며 물가폭등을 야기했다. 


벌어놓은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생계수단 마저 잃게 된 주민들 사이에서 거센 불만이 일어났다. 대부분 시장 장사를 통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시장통제를 앞세운 화폐개혁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폭거적 조치였다.


북한의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원들에 대한 폭력행위까지도 발생했다. 주민들의 저항이 집단행동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불만이 계속 누적되면서 폭력행위가 갈수록 고의적이고 과격해지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지난 90년대 말 대량 아사 기간 이후 최악의 민심 이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혼란이 극심해지자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단행 2개월 만인 2월 4일, 전국적으로 시장통제를 풀어 사실상 모든 물품에 대한 거래를 허용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시장 거래는 허용하되 국가가 지정한 가격에서만 물건을 거래토록 하는 국정가격을 발표했다. 북한 당국은 곧 국가가 고시한 시장 가격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국정가격을 100배 인상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어 3월 들어 외화사용 및 대중무역 통제가 완화되며 북한 내 시장 운영은 화폐개혁 이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이후 현재까지 북한 내에서 국가의 허용 아래 열리는 상설시장 외에도 당국의 단속을 피해 자리를 옮기며 열리는 ‘메뚜기’ 시장 등이 화폐개혁 이전 상태처럼 운영되고 있다. 다만 운영 시간에 제한이 있고, 화폐개혁에 따른 여파가 남아 전체적인 거래량은 줄어든 상태라고 북한 내부소식통들은 전하고 있다.


◆ 北당국에 대한 주민 ‘불신’ 더욱 높아져


주민들의 불만이 쉽사리 누그러들지 않자, 북한 당국은 정치적 영역에서도 화폐개혁 실패를 공식화했다.


3월에는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물어 노동당 재정부장 박남기를 총살하고, 화폐개혁을 이용해 개인 재산을 축적한 지방 간부들에 대한 해임과 처형이 이어졌다. 김영일 전 총리는 평양에서 인민반장들을 모아놓고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이 같은 조치는 화폐개혁으로 분노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책임 회피용’ 처벌뿐이라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평가다. 


북한 당국의 민심 달래기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부를 향한 주민들의 불신은 깊어져만 갔다. 시장 폐쇄 및 허용이 반복되며 당국의 정책 운용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더군다나 북한 당국은 통제 경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반(反) 시장화’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실패로 끝난 화폐개혁은 지난해 연이어 벌어진 150일, 100일 전투에 이은 북한당국의 계획·공식 경제 ‘정상화’ 의도의 연장으로 풀이된다. 


예상치 못했던 주민들의 반발에 일시적으로 시장 운영 등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북한 당국은 근본적으로 주민들의 개인적 시장 활동를 통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은 오히려 화폐개혁을 전후로 해서 인민경제를 차단하고 국가 주도의 통제,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의 경제관련법을 제·개정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1일, 11월 25일, 12월 10일 등 3차례에 걸쳐 노동정량법, 부동산관리법, 수출품원산지법 등을 제정했으며, 올해 초에도 인민경제계획법을 개정을 통해 국가의 통제·감독 기능을 큰 폭으로 강화했다.


◆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으로 돌파구 찾아


이 외에도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이후 약화된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선 외부로의 정보 유입·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북한 내부의 정세·동향이 실시간으로 외부에 전해지고 있고, 화폐개혁 실패와 이에 따른 민심 악화가 대북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북한 내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이에 따라 화폐개혁 실패 등 사회 불안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남한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의 명칭을 10년 만에 ‘인민보안부’로 바꾸고, 그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특히 전국 도(道) 인민보안국 산하에 300명 규모의 특별기동대를 신설해 국가안전보위부가 전담하고 있는 반(反)체제 및 반국가사범 단속까지 수사영역을 확대하기도 했다.


또한 국가안전보위부 차원에서도 전파탐지국 요원들과 독일산 수입 전파탐지기를 동원해 두만강-압록강 국경지역에서 중국산 휴대전화 사용자들을 집중 추적하는 등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는데 활동을 집중하고 있다.


이 외에도 대북전단, 한국산 영화 드라마 DVD, 외국 음악을 담은 MP3 및 컴퓨터 등 한국 및 외부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는데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화폐개혁 실패를 통해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경제권을 통제할 만한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대내외에 분명히 드러났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내부 통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1순위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자체적인 경제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운 북한의 입장에서 경제 개발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이마저도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정일은 올 한해만 두 번씩이나 중국에 대한 경제시찰 나서 중국의 경제지원 및 경협을 요청했고, 10월에는 북한의 시·도당 책임비서들을 동북지역 시찰에 내보내 경제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외에도 중국의 두만강 유역 개발 프로젝트인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방 선도구’ 개발을 위해서도 적극 나서는 등 중국으로부터의 돈 줄 확보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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