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월북 만담가 申不出 재평가 움직임

1947년 월북, 승승장구하다 1960년대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일제시대 최고의 만담가 신불출에 대한 북한 당국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월간 예술잡지 ‘조선예술’ 3월호는 ‘만담의 재사 신불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의 과거 활동상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최근에 경애하는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 신불출의 예술창조 활동에 대하여 여러 차례 감회 깊이 회고하시면서 그의 만담 작품들을 다시 출판할 데 대한 은정깊은 사랑을 안겨” 주었다고 전했다.

잡지는 또 김정일 위원장이 “전국적인 만담경연도 조직하여 우리 시대 새로운 만담수들을 찾아 키울 데 대한 조치”도 취했다고 밝혔다.

1970년대 이후 북한의 출판물에서 신불출에 대한 것을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북한 당국이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초에 걸쳐 발행한 ‘조선대백과사전’에 다른 유명 인물들을 소개하면서도 신불출은 싣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신불출이 최근 복권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남측 자료에 의하면, 신불출은 광복 후 조선영화동맹에 참여해 좌익 활동을 벌이다가 1947년 월북한 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을 지내며 공로배우 칭호를 받고 ‘신불출만담연구소’ 소장을 맡는 등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그는 그러나 남측 기록상 1960년대 초 한설야(韓雪野)가 ‘종파주의자’, ‘복고주의자’ 등의 죄목으로 숙청당할 때 함께 숙청돼 지방의 협동농장과 정치범수용소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극작가로 활동했던 탈북자 장해성씨는 신불출이 지방으로 추방당한 시기를 1960년대말이라고 전해 이러한 남측 기록과 큰 차이가 나는 등 신불출의 말년 행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장해성씨는 “신불출이 한설야 당시 문예총 위원장의 생일축하 자리에서 한설야를 치켜세우는 발언을 해 1960년대 말 지방으로 추방됐다”며 당시 보고를 받은 김일성 주석은 “아주 사상성이 없다”고 신불출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설명했었다.

신불출의 행적과 관련, 조선예술 3월호는 “해방 직후는 물론이고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사람들 속에서 신불출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신불출은 우리 인민의 남다른 사랑을 받은 만담가”라고 강조했다.

조선예술은 또 신불출이 18살 되던 1920년대 중엽부터 무대에 올랐으며 일제 당시 공연에서 일제에 항거했고, 월북 이후 6.25 전쟁 후에는 농촌과 공장을 돌며 순회공연을 했으며, 김일성에 의해 ‘신불출만담연구소’가 만들어지고 1955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고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그가 숙청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잡지는 신불출이 1907년 10월 22일 개성시 동본정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69년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사망 장소와 경위는 설명하지 않았다.

잡지는 “신불출은 1969년 생을 마칠 때까지 수령님(김일성)의 크나큰 은정을 생각하며 그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우리 나라 풍자만담의 생리를 더 깊이 연구하고 그 성과를 체계화하는 것과 함께 신인 육성에 자신의 모든 힘을 깡그리 다 바쳤다”고 소개했다.

남측 자료에는 그의 출생연도가 대부분 1905년으로 기술돼 있으며 사망연도는 불상이거나 1970년대 초라고 적고 있다.

북한에서 13년간 조선인민군협주단 무용배우로 활동하다 요덕수용소에서 8년간 수감생활을 한 후 2003년 말 한국에 들어온 김영순(71)씨는 지난 2004년 증언을 통해 요덕수용소에서 신불출과 함께 있었다면서 “1976년쯤 요덕수용소 구읍지구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비참하게 죽었다”고 말했었다.

신불출의 사망연도 역시 1969년, 1970년대초, 1976년 등으로 크게 엇갈리는 것이다.

조선예술은 신불출의 본명은 신상학이라며 그가 신불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광복 직후 한 신문기자와 인터뷰에서 “나의 이름은 본래 불출이가 아니라 상학입니다. 왜 불출이라고 개명했느냐구요. 그것은 왜놈의 세상인 줄 알면 태어나지 않을 걸 태어났다. 즉 네놈들 세상엔 나가지 않겠다고 한 데서 아니 불(不)자와 날 출(出)자 하여 불출이라 이름을 갈았지요”라고 말했다는 것.

남측에서는 그의 본명을 신흥식으로 적고 있다.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 팀장은 “북한은 199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체문학론’ 발표 이후 민족문화 유산 정책 방향을 큰 틀에서 수정하고 있으며, 20세기 민족문화 유산을 자기들 나름대로 가치를 인정해 재출간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신불출에 대한 언급과 만담집 재출간 움직임은 문화분야에서 그의 복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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