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월드컵 8강 신화와 영웅들의 몰락①

2006년 독일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국민의 가슴이 또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4강 신화에 이어 이번 월드컵에서도 기적을 바라는 국민의 함성이 메아리 칠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탈리아 16강전에서 등장한 ‘AGAIN 1966’ 카드섹션은 탈북자인 기자의 마음속에 아직도 그림처럼 남아있다.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꺾은 8강 신화를 재현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바램이 역력히 묻어나는 화폭이었다.

그 장면을 북한의 8강 주역들이 보았다면 가슴이 뭉클해졌을 것이다. 지금도 8강 기적을 기억하는 북한주민들의 심정은 남다르다.

당시 북한 축구단의 이름은 ‘천리마 축구단’.

전반 종료 4분 전에 터진 박두익의 강슛이 우승후보였던 이탈리아의 골 네트를 갈랐을 때 북한주민들의 심정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평균 신장 162cm의 선수들은 사상 유례없는 ‘사다리 전법’으로 헤딩력이 유리한 이탈리아 선수들을 제압했다.

8강전 북한-포르투갈전에서 경기시작 1분만에 터진 박승진의 첫 골, 연이어 터진 이동운과 양성국의 골로 3-0으로 앞서나갔다. 작지만 날렵하고 점프력이 뛰어난 북한팀의 플레이는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러나 북한의 돌풍은 거기까지. 골게터 에우제비오에게 연거푸 4골을 내줘 3-5로 패한 포르투갈전은 지금도 북한주민들에게 두고두고 아쉬운 경기로 남아있다.

인민의 영웅에서 혁명화 대상으로

▲ 북한 천리마 축구단의 사다리 전법

귀국 후 선수들은 인민의 영웅으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박두익과 신영균, 오윤경에게 체육인의 최고영예인 인민체육인 칭호가 수여되었고, 선수 전원에게 공훈체육인 칭호가 주어졌다.

직장이면 직장, 학교면 학교, 사람들이 모인 곳은 8강 신화의 무훈담으로 오르락 거리고, 박두익과 신영균은 영웅으로 떠받들렸다.

그러나 그들의 신화도 잠깐, 얼마 안 있어 사상투쟁의 대상이 되어 몇 명을 제외한 선수전원이 혁명화 대상으로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북한이 전반 3-0으로 이기고 있다가 후반 들어 5골이나 허용해 패한 것이 사상투쟁의 원인이 되었다.

얼마 후 주민들 사이에서는 “선수들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여색작전에 녹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상대국이 경기 전날 선수들을 외국 여인들과 자리를 같이하도록 유도했다는 것.

그러나 모든 면에서 사상과 조직규율을 강조하는 북한의 특성상 ‘여색작전’에 녹아났다는 여론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선 집단적으로 투숙하는 북한 대표팀 숙소에 외국인 여성진입이 쉽지 않다는 사실과, 선수들이 여성들과 교제할 만큼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8강 영웅들의 미스터리는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북한당국의 허가를 받고 평양에 들어가 ‘천리마축구단’을 촬영한 영국기자 다니엘 고든의 다큐멘터리에 의해 잠시 밝혀진 바 있다.

포르투갈 전 패인에 대해 당시 선수였던 림중선은 “우리가 먼저 세 알(골)을 넣고, 그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경험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즉 시간 끌기 경험이 부족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박두익은 “호텔 안에 있는 예수의 사진과 손에 든 십자가가 무서움증을 불러 잠자리가 불편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한 탄광, 광산으로 쫓겨가 축구단이 해산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정치범 수용소 출신 강철환 기자는 북송 재일교포의 편지를 전해주다 간첩혐의로 요덕수용소에 끌려온 박승진에 대해 “요덕수용소 3작업반에 있는 콘크리트 다리 건설장에서 젊은이들이 박승진을 알아보고 그에게 축구 무훈담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북한은 한번도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금도 북한주민들은 “월드컵 8강의 대가 끊어지지 않았다면……”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한다.(계속)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