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원조 연명 10여년..농정개혁 등 근본대책 필요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에 대한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1990년대 중반 본격화된 이후 14년째 지속되고 있다.

90년대 중반 북한 농업 자체의 취약성과 경제난이라는 구조적 요인에 수해와 가뭄이 번갈아 덮치면서 식량난이 극도로 악화돼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 등은 물론 청장년들의 아사가 대량 발생한 후 북한의 식량난은 만성화됐다.

‘자급자족’을 내세웠던 북한 당국은 1995년 7월 미국 정부에 100만t의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직원 등은 국제회의에 참가할 때마다 식량난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절박한 상황에 내몰렸음을 드러냈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평년작인 409만t보다 40%가량 감소한 260만t 정도였다.

그해 남한이 15만t의 쌀을 무상 지원한 데 이어 일본이 50만t, 중국이 11만t, 미국이 5만4천t, 태국이 5만2천t을 유.무상 지원함에 따라 총 100만t가량의 식량이 북한에 전달됐다.

이런 지원에도 북한의 식량난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미국은 이듬해 6월 추가지원에 나섰고 여러 나라와 비정부기구(NGO)도 세계식량계획(WFP)을 창구로 지원에 동참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끝이 보이지 않는 대북 식량지원의 역사가 시작됐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남한의 직접 지원을 제외하고 WFP를 통해 이뤄진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180만t, 6억3천500만 달러 어치에 달한다.

이는 대랑 아사자의 발생을 막았을 뿐, 북한의 취약계층과 지방의 식량난은 여전했다.

유엔 인도지원사무국(OCHA) 자료에 따르면 2001년 2억4천만달러, 2002년 2억610만달러, 2003년 1억1천778만달러, 2004년 9천334만달러어치의 식량이 지원됐다.

2002년 말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대북 식량지원 규모는 2005년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이후 주요 원조국인 미국과 일본이 지원을 중단하는 등 급감해 그해 남한을 제외한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은 1천79만달러로 1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한 2006년에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한층 강화되면서 지원액이 전년도의 절반도 안되는 310만달러에 그쳤다.

지난해는 WFP의 적극적인 노력과 국제여론의 호조덕분에 식량지원이 1천916만 달러로 늘어났다.

최근 북한에서 대량 아사자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대북 식량지원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배경엔 남한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10년 이상 지원함에도 북한이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농정개혁 등 자구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점도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권태진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김일성 체제 때 자급에 가까울 정도의 식량을 생산하는 등 지금보다 식량사정이 나았지만 생산량이 1980년대 중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대기근이라는 타격을 받았다”며 “경지가 부족하고, 비료 생산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농자재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비료 필요량은 520만t가량인데, 생산량은 380만t에 불과하다”며 “집단영농을 개인영농으로 바꾸고 경제를 발전시켜 농자재와 비료의 수급이 가능해진다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자급 수준인 650만t은 몰라도 최소 소요량인 520만t에는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