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원심분리기 공개해 HEU 판도라 상자 열어

지난주 북한을 방문했던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 북한에서 대규모 우라늄 농축시설을 목격했다고 밝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이 폭풍전야 국면이다.   

헤커 교수는 20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영변에서 수 백 개의 정교한 원심분리기가 설치돼 있는 것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면서 원심분리기는 ‘초 현대식 제어실’을 통해 통제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NYT는 북한이 헤커 교수에게 원심분리기 2천개가 이미 설치돼 가동 중인 상태라 말했다고 밝혔다. 원심분리기 공개는 북한이 기존의 플루토늄 방식이 아닌 우라늄 농축 방식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 기술을 상당 부분 진척시켰다는 의미를 갖는다. 원심분리기 2천개를 모두 가동하면 매년 핵무기 2기를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북한이 지난해 6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보유를 인정한 이후 1년반 만에 이를 공식확인한 셈이 됐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6월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2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반발하면서 UEP에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UEP는 핵무기 제조를 위한 ‘고농축우라늄’의 가능성과 연구용 ‘저농축우라늄’의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지만, 대북전문가들은 HEU 프로그램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었다.


실제 2002년 당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 뒤 ‘북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했다’고 밝혔지만 북한이 이를 부인하면서 이른바 ‘2차 북핵위기’를 촉발된 바 있다. 그만큼 북한 핵개발에서 UEP는 첨예한 사안이다.

북핵 전문가들은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오래 전 부터 준비해왔던 만큼 이 기술을 실제 보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태우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와 가진 통화에서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지금쯤 당연히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면서 “북한의 경수로 건설 역시 HEU 프로그램를 위한 계획된 의도”라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2천기의 원심분리기가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핵무기를 만드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도 “이제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면서 “기정사실화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북한은 몰래 플루토늄 개발 했을때와 마찬가지로 농축우라늄 개발도 비밀리에 개발을 마쳤다는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에 핵기술을 넘겨준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이미 북한의 우라늄 농축 사실을 증언해 왔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말 칸 박사가 비공개 문건에서 “북한이 이미 2002년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었다”면서 “1999년 방북 당시 산악터널을 방문해 3개의 핵탄두를 보았다. 2002년 북한은 3천대 또는 그이상의 원심분리기를 가동해 소규모 우라늄을 농축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었다.

칸 박사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핵군축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도 북한의 우라늄 농축 기술 보유를 주장했다. 그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HEU 개발이 실험실 단계를 넘어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해 시범적인 공장을 건설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또 영변에 건설 중인 경수로 건설 사실도 밝혔다. 헤커 박사는 북한 방문 직후인 지난 13일 베이징에서 외신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평안북도 영변에 경수로 1기를 건설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헤커 박사는 경수로 발전용량이 25~30MW(메가와트)라면서 북한이 이제 막 건설을 시작했기 때문에 완공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형 경수로 건설 카드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즉 에너지 생산을 위한 중소형 경수로를 짓고 경수로 가동을 위해 HEU를 생산하겠다고 나설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는 진단이다.

전 연구위원은 “대형 경수로는 핵분열성이 강한 U235가 3~5% 농축된 핵연료를 사용하지만, 중소형의 경우에는 농축도가 15~20%로 높아진다”면서 “보통 무기급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이상이며, 농축도가 높아질수록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의 생산 능력도 커지게 돼 북한이 소형 경수로의 가동을 위해 농축도 15~20%의 농축우라늄을 생산하겠다고 나서는 경우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고 강조했다.

우라늄탄은 플로토늄탄보다 이전이 자유롭고, 은밀히 제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한의 원심분리기 시설 공개와 때를 맞춰 이뤄진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아시아 방문도 주목되고 있다. 보즈워스 대표는 범부처 방문단을 이끌고 이날 오전 미국을 떠나, 한국(21일), 일본(22일), 중국(23일)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보즈워스 대표의 방문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및 영변에 건설중인 것으로 알려진 경수로 문제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최근 연이어 경수로 신축과 핵실험 징후 노출, 원심분리기 공개 등의 핵위협 행보에 한미일이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원심분리기 가동 중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며 “추가적 상황악화를 자제하고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해야 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한편 북한은 김정은 체제에서 플루토늄탄과 농축우라늄탄 보유를 기정사실화함으로서 보다 강화된 핵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원심분리기 가동과 경수로 건설을 공개하는 것은 ‘대화유발’ 측면도 있지만, 핵보유국 지위을 얻기위한 북한식 ‘투트랙’전술”이라며 “김정은 후계체제에서 북핵문제 해결 가능성이 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 교수는 “6자회담 틀에서 농축우라늄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완전히 다른 페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비로서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