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우상화 예산 40%”…김부자 연구실만 수만개

김 부자 우상화 선전물 관리에 북한예산의 40%가 소요된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를 놓고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느냐며 의아해 하는 남한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 북한에 우상화물이 정확히 몇 개이며, 그 관리예산이 얼마나 책정되는지 정확히 밝혀진 적은 없다. 그러나 북한전역에 솟아있는 우상화물의 숫자와 규모를 볼 때 전체 국가예산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각종 우상화 선전물을 모두 합하면 남한 교회 지붕에 있는 십자가 숫자의 수십배가 된다.

얼마 전 사망한 투르크메니스탄의 니야조프나 이라크의 후세인이 세운 동상이나 기념비 등은 김일성 김정일에 비하면 한마디로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70년대 김정일이 후계자로 전격 등장하면서 본격화된 우상화 건설은 불과 10년 사이에 북한 전역을 뒤덮었으며, 지금도 그 건설은 중단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도 자강도 위원발전소, 평북 창성군 유평, 함남 함주군 연포, 평북도 향산군 상서리, 염주군 용북리, 박천군 단산리 등에 사적지표식비를 만들었다.

최근에 건설된 사적비들은 방문 당시 김 부자나 김정숙(김정일생모)의 모습을 색유리, 타일, 천연석 등으로 새겨 넣어 만든 쪽무늬(모자이크) 벽화들이다.

북한 김정일이 돈 낭비 하려고 쓸데없이 우상화 선전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경제난 속에서도 우상화 선전물 건립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주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영원히 살아있는 수령님과 장군님(김정일)을 보면서 숭고한 감정을 유발시켜 떠받들도록 하려는 것이다.

물론 성인들 중에 김정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김정일이 나라의 지도자이며 여전히 건재하고, 청소년들이 장군님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사상으로 무장시키려는 의도다.

숫자로 본 우상화 선전물 14만개

가장 대표적인 우상화 선전물은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이다. 이 궁전은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90년대 중반 8억 9천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이 돈은 강냉이 600만톤을 살 수 있는 액수로 1백만명이 이 궁전 때문에 사망한 셈이다.

기념궁전 이외에도 김일성 김정일을 숭배하는 각종 동상, 혁명사상 연구실, 사적지, 전적지, 현지지도 기념비, 영생탑, 구호나무 및 구호글발과 그 일가족들의 우상화 선전물까지 합하면 약 14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김일성동상은 전국적으로 약 70여 개로 평양 만수대언덕과 각도 소재지마다 건립되어 있고, 김정일 동상은 국가안전보위부 청사 뒤뜰에 극비에 건설되었으며, 김 부자의 석고상은 매 연구실마다 소재되어 있다.

김부자 연구실은 전국 200개 시·군마다 대규모로 1개소, 중앙기관 및 내각기관 안에 1개소, 인민보안성 및 지방 보안서,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각 시·군에 1개씩 건설되었다. 이 연구실 규모와 내부 장식 및 유지 보수는 웬만한 남한 박물관을 뛰어 넘는다.

이보다 작지만 각 시·군에 소속된 리(里)∙노동자구에도 김부자 연구실이 있다. 각 시·군에 리와 노동자구가 약 30개가 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약 6천(200×30=6000)개가 있다. 이 건물 상태와 내부 장식도 북한에서는 최상급이다.

리나 노동자구 산하 농장과 규모가 큰 작업반, 2급 이상 공장∙기업소, 북한군 대대급 이상에도 연구실이 1개소씩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따지면 북한 전역에 김부자 연구실만 수만 개가 있는 셈이다.

노천에 건설된 대표적 우상화선전물은 전국각지에 건립된 영생탑과 정일봉, 금강산, 묘향산 등 천연바위에 새긴 김부자 우상화 구호들이다.

전국 도와 시군, 노동자구 시내 중심에 건립돼있는 영생탑은 기존 명칭은 ‘만수무강탑’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로 되어 있던 탑의 구호는 94년 7월 김일성 사망 후 “위대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로 바뀌었다.

특히 수백만 주민들이 굶어 죽던 96~97년 외국으로부터 화강석과 특수시멘트를 사다가 부착시켜 건설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외국에서 특수재료 수입해 우상화 건설

김 부자 동상과 연구실의 석고상, 미술 형상작품은 만수대창작사, 4.15문화창작단을 비롯한 각 도(직할시) 시군의 미술창작사에서 창작·보수한다.

특히 만수대창작사에는 공예창작단, 산업미술창작단, 조각미술창작단, 영화예술창작단, 동상 및 석고상창작단, 조선화창작단 등 분야별 창작단을 두어 김일성부자 우상화 상징물을 전문 제작하고 있다.

김 부자의 형상작품은 창작단 1호 창작과에서 제작하는데, 1호창작단 내에서도 1호작품 미술가 외에 누구도 작품을 제작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김부자를 그릴 수 있는 화가임을 증명하는 특별증명서가 발급되고, 정기적인 시험을 거쳐 당성과 기량을 검증 받은 사람들이다.

만수대창작사에는 약 500여 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각 도 미술창작사에 30여 명, 시 군당 선전선동부에 상주인원을 두고 있다.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은 중앙은행의 특수자금과에서 제한 없이 지원받고 있으며, 외국으로부터 고급재료를 충당 받고 있다.

수십만 평의 대지면적을 차지한 백두산지구의 보천보, 삼지연, 왕재산지구 등 대노천 박물관에 건설된 우상화 선전물을 관리하는 인원만도 수천 명에 달한다.

혁명사적지와 전적지들은 김 부자가 다녀간 곳이면 건설된다. 즉 김 부자가 어떤 농가를 찾으면 그 농가는 인원의 출입이 금지되고, 사적물로 보존되며 전문관리원을 붙여 관리한다.

노동당 선전일꾼들의 경쟁적인 우상화선전 아이디어 발굴로 웃지 못할 헤프닝이 연출되기도 한다. 어느 날 함경북도 성진제강소를 찾은 김일성이 손으로 강판두께를 가늠해보자, 다음날로 수 t에 달하는 그 강판을 사적관에 끌어들여 진열했던 적도 있다. 이처럼 아첨꾼들의 경쟁적인 충성심이 우상화선전물의 급속한 증가를 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천혜의 명암을 파고 쓴 구호글발

백두산과 금강산, 묘향산 등 명승지의 산중턱에 새긴 구호글발도 규모가 어마 어마하다.

▲ 김정일의 고향집이라고 주장하는 소백수골 장수봉의 산중턱에 새겨진 “정일봉”은 글자 한 개에 60톤짜리 화강석 6개를 헬기로 날라다 부착했고, ▲금강산 향로봉에 새겨진 “금강산은 조선의 명산 세계의 명산입니다. 김일성 1947년 9월 27일”글자는 높이 20m, 너비는 16m, 글자 획 너비는 3m, 글자 깊이는 1m 에 달한다.

▲묘향산 유선폭포 바위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1994. 7. 8”글자는 높이 3m, 너비 2.3m, ‘김일성’ 글자는 3.2m, 2.5m이며, ▲금강산 만폭동 법귀동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1994. 7. 8”글자높이는 8m, 너비 5m이다.

▲금강산 외금강 구룡폭포의 “조선아 자랑하자 5천년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수령으로 모셨던 영광을! 1994년 7월 8일 새김”와 ▲금강산 국지봉의 “항일의 여장군 김정숙”은 글자 높이 4m, 너비 3m, 김정숙 글자 크기는 5m, 6m이다.

▲백두산 향도봉의“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 1992. 2.16”은 음각으로 새기면 눈이 오면 메워진다고 양각으로 새겼고, ▲금강산 옥녀봉의“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 김정일”는 글자높이 11m, 너비 8m에 달한다.

이 외에도 김 부자를 우상화한 구호나무와 구호글발은 전국의 명승지와 관광지마다에 수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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