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우리는 총대국가’…’공산주의’ 말도 꺼내지 마라

올해 4월에 개정된 북한헌법 전문(全文)이 공개됐다.

핵심 내용은 1)지도사상으로 주체사상과 함께 ‘선군사상’ 추가 2)주권계급인 근로인민에 ‘군인’ 추가 3)사회 건설 지향성에서 ‘공산주의’ 삭제 4)국방위원장 권한 강화 등이다.

묘한 뉘앙스를 주는 항목도 있다. ‘근로인민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항목이 제1장(정치) 8조에 들어가 있다. ‘인권’ 용어가 명문화 되어 들어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헌법은 전통적인 당-국가 체제에서 ‘국가’의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당이 국가를 ‘지도’하면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나아가자는 것이 전통적인 공산권 국가의 사회건설 목표다. 여기에서 지도기관은 당(黨)이다. 국가기관은 반드시 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국가’의 지위와 역할은 점차 약화되며, 공산주의 높은 단계에 진입하면 ‘국가’는 조락(凋落)-폐절(弊絶)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국가는 과도기적으로 존재하며 공산주의 높은 단계에서 ‘국가’가 하는 일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품을 관리하는” 정도에 그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의 국가 개념과 구공산권의 ‘국가’ 용어는 이처럼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6.15 선언에서도 ‘국가의 통일문제’가 아니라, “남북 쌍방은 ‘나라’의 통일문제를….”로 표기되었다.

또 구공산권 사회의 헌법은 ‘대외 전시용’ 측면이 있다.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계급독재-수령독재를 강화하다보니 거의 대부분 ‘전체주의 1인 수령독재’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헌법보다는 수령의 교시와 말씀이 헌법보다 상위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특히 북한의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은 북한 내부적으로 완전히 초헌적인 지위를 갖는다.

이 때문에 구공산권 국가의 헌법은 대외적으로 “우리도 엄연히 헌법이 있으며, 종교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 등 인민의 기본권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시위(demonstration)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락했다. 고위 탈북자에 따르면 특히 북한에서 헌법은 일반주민들의 삶과는 전혀 무관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고위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에서 내부적으로 헌법개정 초안을 만드는 작업은 1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김정일이 지시하고 측근들과 관련 전문가 몇 명이 모여 개정작업을 끝내고, 형식적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회의에 부치면 그만이다. 여론 수렴 과정은 애초에 있을 수도 없다.

이번 개정 헌법의 핵심은 “북한은 선군(先軍) 국가”라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확실히 명문화’한 것이다.

제3조에서 “공화국은….주체사상, 선군사상을…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며 ‘선군사상’을 새로 추가했다. 그리고 “공화국의 주권은 노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군인’을 추가했다. 물론 계급관계에서도 지식인(근로 인테리)보다 앞서 있다.

또 위와 같은 맥락에서 국방위원장(김정일)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개정 헌법에서 “국방위원장은 공화국의 최고 영도자”로 명기되었다.

원래 북한에서 ‘영도’라는 표현은 당과 수령에게 사용되어 왔다. 지도(영도)기관은 당이며, 유일 영도자는 수령(=수령의 대리인) 1인밖에 없다. 당과 수령이 영도하는 체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방위원장도 ‘최고영도자’로 표기되었다. 물론 ‘국가를 영도하는’ 지위다.

그동안 김정일은 국가를 대표하는 지위로서 ‘국방위원장’ 타이틀로 국가간 정상회담도 해왔다. 이미 김정일은 당 총비서, 당중앙위 군사위원장, 국방위원장,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당 군 정에서 전권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헌법에서 국방위원장이 ‘공화국 최고영도자’로 명기되어 대외에 알려짐으로써, 조선인민공화국은 확실한 ‘선군 국가’, 다시 말해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특수 총대국가”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또 내용적으로 “우리는 선군사상을 지향하는 선군 국가이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회가 아니다”라는 점을 확실히 못박은 것이다.

북한은 이미 60년대 말부터 사회주의 변종 체제로 이행되기 시작하여, 70~80년대를 거치며 주체사상을 내세운 김일성-김정일 유일지배체제로, 90년대 이후에는 구공산권 중에서도 매우 기형적인 선군노선을 걸어왔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지향성을 내용적으로 포기한 것은, 길게 잡으면 당의 역할이 유명무실화되기 시작한 70년대 중반부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그동안 사실상 중요하지도 않았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 국가를 대표”하는 문제도, 개정헌법 3조, 4조, 100조에 의거하여 사실상 무의미하게 되었다.

한편, ‘근로인민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항목이 제1장(정치) 8조에 새로 들어갔는데, 물론 이 표현은 ‘대외 기만용’이 틀림없어 보인다. 헌법에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를 허용한다”는 선전(propaganda)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표현을 헌법에 넣음으로써, 앞으로 김정일은 국제사회에 “우리는 근로인민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주장하고, “우리는 근로인민을 위한 사회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식 근로인민의 인권’에 시비걸지 말라”고 주장할 대외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이는 김정일이 앞으로 유엔과 국제사회, 미국 민주당의 북한 이슈가 ‘인권문제’로 본격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은 결국 김정일의 잔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개정헌법에서 북한은 껍데기만 남아있던 공산주의 사회도 지향하지 않겠으며, 더욱더 선군노선, 즉 군사우선주의 노선을 국가적으로 추구한다는 사실을 대외에 알린 셈이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 정권에게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면, “위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정체성을 짓밟는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하의 마르크스-레닌은 이미 오래 전에 돌아누웠고, 이제 군사주의자 스탈린도 “정일아, 그만해라. 내가 졌다”고 할 것 같다. 1917년 구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이미 역사박물관에 들어가 있어야 할 괴상한 공산 변종체제를 21세기 대명천지에 우리는 눈 앞에서 목도하고 있다. 이것이 한반도 북쪽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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