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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외자유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12~14일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의 방북과 때를 같이하여 중국기업들의 대북 투자현황과 규모가 국내언론에 속속 보도되고 있다.
17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백두산, 개성관광이 8월말부터 시범관광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남북 장관급 회담 이후 경추위에서 12개 항목의 남북경협이 추진되고 있다. 평양을 방문한 EU 한반도 의원외교협의회단 글린 포드 의원은 “북한이 WTO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북한이 4차 6자회담에서 핵 포기를 선언하고 개혁개방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공식입장은 이달 말 개최되는 4차 6자회담을 지켜보면 될 일이지만 북한이 중국, 남한의 자본을 유치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은 남한과 중국을 동시활용하면서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나선 것일까. 아니면 2000년 전후처럼 김정일이 개혁개방 ‘말 풍선’만 또 늘어놓고 있는 것인가?
북한경제, 중국의존 가속화는 분명
14일 <노동신문>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중국 국가주석 특별대표 당가선 동지를 접견’ 제하의 기사에서, 중국의 6자회담 재개 권유에 대한 김정일의 긍정적인 호응, 쌍방의 이익수호에 관한 문제들이 토의됐다고 보도했다.
‘쌍방의 이익 수호’는 양국간의 정치 군사 경제 영역을 포괄하는 의미지만 지금 북-중관계에서 쌍방 이익수호의 현안은 핵문제와 중국의 대북경제지원이다.
▲ 중국인들의 상업활동 거점이 된 평양 제1백화점 |
현재 북한에 중국의 자본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 주요 기업만 보아도 컴퓨터 130만불(대동강계산기공장+南京熊猫電子集團有限公司), 유리공장 2,400만불(耀华玻璃集团公司)무상지원, 백화점 운영 약 600만불(평양 1백화점+沈陽中旭集團), 담배의류 등 2000만불 투자, 동광개발 약 2,600만 달러(혜산동광+長白招金鑛業株式有限會社) 등이다.
중국의 대북 교역액은 2000년 4억8천 8백만달러, 2002년 7억3천 8백만달러, 2003년 10억2천 2백93만달러, 지난해는 13억8천 5백만달러로 급증했다.
공산품을 비롯한 시장의 대다수의 상품들은 중국상품이 점령했다. 북한은 철금속 및 비철금속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많은 부문 개방하고 있어 ‘북한이 중국의 제4성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중국을 통해 지하자원 개발, 제조, 유통과 같은 기간산업개발에 주력하고, 남한에는 관광, 에너지, 제조업 쪽으로 카드를 배분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역에서는 투자규모에 따라 생산된 지하자원의 반제품 또는 원자재를 변제하는 형식으로 되어있고, 상업기관들은 임대차계약에 따라 유통된 판매수익의 일부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
대신 남한에 대해서는 관광 위주로 개방, 현금 확보에 주력하면서 개성공단에 제조업을 비롯하여 수산업, 농업 쪽으로 확대해가고 있다.
최근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식량 50만톤, 비료 15만톤을 지원받았고 경추위에서 합의한 12가지 교류지원 항목까지 합하면 앞으로 지원규모는 대폭 늘어날 것이다.
현재 핵포기를 전제로 한 200만KW 전력지원, 그외 플러스 알파의 부수적 지원이 김정일의 승낙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말하자면 김정일은 현재 자본을 유치하면서 남한과 중국의 양고삐를 쥐고 있는 형국이다.
中자본 유치는 체제안전보호 측면
그동안 북한은 제한적인 개혁을 해왔다. 그러나 신의주 특구계획은 실패했고 ‘7.1 조치’는 살인적인 물가폭등으로 인플레만 증대시켰을 뿐, 사실상 실패로 확증되었다.
지난 10여년간 김정일은 개혁개방 대신 핵무기 개발을 선택해왔다. 지난 2월 10일에는 핵보유를 공식 선언했다. 김정일은 핵무기만 쥐면 체제보장에는 문제없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핵무기는 이미 확보했으므로 김정일은 보유한 핵무기를 잘 활용하여 주변국에 압박전술로 활용하고, 주민들에 대한 내부단속만 잘하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타산하는 듯하다. 김정일에게 남은 것은 경제회생인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확실히 나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에도 제한적 개방을 통해 비어있는 국고를 남한의 관광달러로 채우고 핵문제는 시간을 끌어가며 계속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자본유치 가속화가 핵 폐기와 개혁개방을 맞바꾼다는 뜻이 결코 아닌 것이다.
핵보유와 북-중동맹 유지가 김정일 전략
김정일은 중국에 문을 여는 것도 아주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경제의 명맥을 틀어쥐면 ‘이권보호’ 차원에서도 중국에 예속될 우려가 커진다.
그래도 중국에 의존하는 김정일의 움직임은 향후 6자 회담과 안보리 회부문제에서 권한이 있는 중국의 후광을 입기 위해서인 것으로 분석된다. 6자 회담의 당사국인 중국을 붙들어 두기 위해 투자를 허용하는, 나름의 고육지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핵무기 보유와 동맹으로서의 중국 장악- 이것이 김정일이 원하는 안정된 구도다. 현대아산 등 남한기업들에 투자개발권을 주고, 번 돈을 통치자금으로 쓰면서 북한주민들을 단속해가는 것이 향후 김정일의 계획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관광 개방 등 한국의 대북사업은 별로 위험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강산 관광을 통해 자신의 독재체제에 변화가 온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도 제한적인 범위를 승인해주고 관광외화를 벌면서 남한을 계속 핵 인질로 잡아놓고 경제지원과 체제안전보장을 꾀하려는 것이다.
한영진기자(평양 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