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영변 核재처리시설 일주일내 가동”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팀에 일주일내에 영변 핵시설의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을 재가동할 것임을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올리 하이노넨 IAEA 사무차장은 2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3일째 열리는 IAEA 이사회 비공개 회의에서 “북한이 일주일내에 (영변) 재처리시설에 핵물질을 투입하겠다고 검증팀에 통보했다”고 말했다고 멜리사 플레밍(Fleming) IAEA 대변인이 전했다.

북한은 지난 19일 지난해 11월부터 불능화 조치에 착수했던 영변의 핵시설을 재가동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플레밍 대변인은 또 북한의 요청에 따라 “검증팀이 오늘 재처리 시설과 인접 지역에 있는 봉인과 감시 장비들을 모두 제거하는 작업을 완료했다”면서 북한은 이와 함께 “검증팀이 앞으로 재처리시설에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겠다는 위협을 본격적으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는 신호로 간주되는 이번 조치로 IAEA는 앞으로 영변의 재처리시설 관련 상황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또 핵탄두에 넣을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최종단계인 재처리시설의 가동이 가시권에 들어옴에 따라 검증체계 구축에 대한 북한과 미국 간의 이견으로 고비를 맞은 북핵 6자회담은 중대 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IAEA 검증팀은 앞으로도 영변에서 원자로와 다른 핵관련 시설의 가동 중단 상태는 계속 모니터링하게 된다. 또 영변 재처리시설에서 약 100개의 봉인과 25기의 감시카메라가 제거됐지만 사용후 연료봉은 아직 봉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용후 연료봉의 봉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IAEA에 다시 제거 요청을 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조만간 이 같은 요청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이 핵시설 복구에 이어 곧 재처리시설 재가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사실상 공언하고 나섬에 따라 북핵협상이 중대 기로에 섰다.

재처리시설에 투입하겠다는 핵물질은 사용후 연료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북한이 조만간 재처리시설을 가동해 핵탄두에 넣을 플루토늄 생산에 들어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증팀의 접근금지와 재처리시설 재가동이 다음 수순으로 여겨져 온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상황을 악화시켜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재처리시설 재가동도 한·미 당국의 예상보다는 훨씬 빠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초 3∼4가지 불능화조치가 취해진 재처리시설을 완전히 복구하는데 적어도 두 달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북한의 ‘핵물질 투입’이 ‘재처리시설 재가동’으로 이어진다면 복구를 시작한지 불과 한 달 만에 완전 복구가 이뤄지는 것이다.

외교 당국자는 “재처리시설 복구가 상당히 많이 이뤄진 것 같다”면서 “전문가들은 당초 시험가동 등 안전조치 등을 모두 감안해서 기간(두 달 이상)을 예상했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천연상태의 우라늄 정제 → ‘미사용 연료봉’ 제조(핵연료봉 공장) → ‘사용후 연료봉’ 제조(미사용 연료봉 연소.5MW원자로) → ‘무기급 플루토늄’ 제조(사용후 연료봉 속 플루토늄 농축.재처리시설) 등의 과정을 거쳐 핵탄두에 넣을 플루토늄을 만들어왔다.

북한은 작년 말부터 5MW 원자로에 들어있던 8천개의 사용후 연료봉 중 현재 4천700여개를 꺼내 수조에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재처리시설에 넣고 농축하면 핵탄두를 1개 이상 제조할 수 있는 6∼8㎏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미 등은 그동안 플루토늄 생산의 최종단계라고 할 수 있는 재처리시설 재가동 여부를 ‘레드라인’으로 삼고 복구 여부를 예의 주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그동안 우여곡절 끝에 5년 넘게 지속돼 오던 북핵 6자회담이 기로에 놓여있다.

만약 실제로 북한이 재처리시설을 재가동할 경우 6자회담 ‘2·13합의’와 ‘10·3합의’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시설 복구가 검증체계 구축에 있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인지 아니면 부시 행정부하에서 미국과의 협상은 포기한 것인지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다만 미국이 그동안 ‘국제적 수준’의 검증 체계 마련을 주장해온 만큼 이 입장에서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을지, 그리고 북한이 어느 수준의 양보면 수용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대선정국에 들어가 있는 부시 행정부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이 병상에 누워 있는 북한이나 모두 한치의 양보도 기대할 수 없는 ‘벼랑 끝’ 형국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