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차시험운행 취소 ‘속’ 훤히 보인다

북한이 25일로 예정된 경의선, 동해선 열차시험운행 취소를 전격 통보해오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는 북한 군부가 열차시험운행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대남담당과 경제관료들이 참여한 남북철도연결 실무협의에서 시험운행에 대한 구체적 일정까지 합의해놓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납북장성급회담 부터는 사실상 결렬시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4년과 2005년에도 시험운행에 합의해놓고도 북한 군부가 군사보장 합의를 해주지 않아 무산된 전례가 있다. 북한 군부는 군사기밀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도로를 통해 수많은 물자와 인력이 왕래하는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내에서도 이번 시험운행이 차질을 빚은 것이 북한 군부가 남북협력 분위기와 체제개방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각대로라면 북한 내에는 군부와 공안기관이 중심이 된 강경파와 대남사업 및 경제일꾼이 포함된 온건파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 내에서 군부와 보위관련 담당자들이 대남 강경 색채를 가질 수는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견’ 수준이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북한 권력 내부에서는 김정일 이외에는 어떠한 권위도 인정되지 않는다.

특히 군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겸 최고사령관이 직접 통제하고 있는 마당에 그와 다른 의견을 독자적으로 내서 국가정책을 좌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열차 시험운행처럼 주요사안을 북한 군부가 독자적으로 반대해 무산시킬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북한을 너무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다.

정치적 원인이든, 군사적 원인이든, 돈 때문이든 간에 열차시험운행을 무산시킨 장본인은 김정일이다. 김정일이 시키는 대로 악역을 한 북측 장성급회담 대표 김영철 중장을 탓할 이유가 없다.

북한은 연일 한나라당을 막말로 비난하며 남한 정권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북한이 오히려 현 집권세력에 태클을 걸고 나온 데는 열차로 ‘장사’를 크게 한번 벌여보자는 속셈으로 보인다.

먼저 돈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남북철도 도로 연결사업에 들어간 돈만 7천억이다. 북한은 철도연결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 역사 건축비용까지 요구했다.

남북간 철도연결이 끝난 상태에서 북한이 철도공사와 관련한 푼돈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철도 시험운행만 계산에 올리면 북한 군부를 내세워 군사기밀 유출 방지를 위한 대규모 건설비용 명목으로 수천억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DJ 방북이나 대규모 개통식과 연계시켜 엄청난 규모의 뒷거래를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의 경제제재로 달러가 부족한 상황에서 거래는 달러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무튼 판돈을 크게 키워 보겠다는 계산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은 최근 대포동 미사일 발사 조짐을 노출시켜 주변국을 긴장시켰다.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없이는 6자회담에 나가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서해 NLL 문제를 적극 제기했다.

이러한 북한의 강경전술이 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와 대미관계를 악화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평화에 대한 대가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치고 빠지고, 협상하기’를 통해 몸값을 불려왔다.

결국 북한은 긴장국면 조성을 통해 ‘평화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자는 속셈을 드러낸 셈이다. 정치적 이해의 정체는 최근 한성열 북한 차석대사가 언급한 선(先)평화체제 후(後) 핵폐기 논의일 가능성이 높다.

또, 한편으로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남북관계를 극적으로 전환시켜 효과를 극대화 시키려는 포석일 수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론 반전에 고심하고 있는 집권세력이 가장 크게 벌일 수 있는 이벤트가 대북사업이다. 북한도 남한 내의 권력지형의 변화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시범운행, 개통식, 인력수송 단계를 밟기 보다는 DJ 방북이나 남북정상회담 국면에서 열차운행을 극적으로 타결해 기차 방북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를 근본적인 배경으로 볼 수는 없지만, 김정일의 잔기술을 감안할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당장 열차가 달리지 않는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동이 나거나 인력•장비 수송에 애를 먹는 것은 없다. 북한이 굳이 안 하겠다는데 우리가 서둘 일이 아니다. 남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때 가서 시험운행이든 본격운행이든 실시하면 된다. 괜히 우리가 서둘러서 김정일의 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이참에 우리 정부가 나서 ‘북한군부 달래기’에 나서는 어리석은 일을 벌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