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열병식 어떻게 열려왔나

북한은 ‘인민군 창건일’(4.25)을 비롯해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4.15), 휴전협정 기념일(7.27), 광복절(8.15), 정권 수립일(9.9), 노동당 창건일(10.10) 등 주요 기념일에 ’명절 행사’의 하나로 정규군이나 노농적위대 등의 열병식을 개최하고 있다.

북한은 1948년 2월 정규군을 만든 데 이어 휴전 직후인 1953년 광복 8주년에 열병식을 개최, 북한 정권의 건재함을 대내외에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북한의 군 창건일은 본래 2월8일인데, 1978년부터 김일성 주석이 항일유격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조직(1932.4.25)했다는 4월25일로 변경, 기념해 오고 있다.

열병식은 광복 8주년과 인민군 창건일이 ’국가적 명절’로 격상된 1996년 군 창건 64주년 등에도 열린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은 5, 10주년 등 이른바 ’꺾어지는 해’에 열린다.

특히 1992년 4월 군 창건 60주년 열병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 최고사령관에 오른(1991.12) 직후 처음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북한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등 대형 군사장비가 동원된 열병식과 퍼레이드에 참석해 “조선인민군대에 영광이 있으라”는 구호를 외쳐 전 세계에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그는 또 “인민군대 열병식도 우리식으로 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열병부대를 항일빨치산, 6.25전쟁 참전노병, 만경대혁명학원 학생, 현역 군인, 노농적위대와 붉은청년근위대 순으로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7월에는 휴전협정체결 40주년을 맞아 열병식이 열렸다.

1995년 10월 노동당 창건 50주년 열병식에선 김정일 위원장이 과거 김 주석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사라졌다. 김 주석 사망(1994.7) 후였기 때문이다. 대신 열병식과 함께 100만명이 동원되는 대규모 군중시위가 이때부터 곁들여졌다.

1997년 4월 김 주석의 85회 생일과 군 창건 65주년을 기념한 열병식 때에는 기념메달을 제작했다.

1998년 9월 정권수립 50주년을 맞아 열린 열병식 및 군중시위는 김 위원장이 김 주석 사망 후 3년 3개월 만에 노동당 총비서에 추대(1997.10)된 직후인 데다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 회의(1998.9.5)에서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고 국가주석직 폐지 등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새로운 ’김정일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주년 때는 인민군 55개 종대 총 1만 5천여명과 민간인 수십만명이 참가해 약2시간에 걸쳐 열병식 및 군중시위가 열렸고, 2002년 4월 군창건 70주년에는 정규군이 아닌 민방위 성격의 노농적위대와 학생 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 대원, 군사학교 학생 등이 대거 참가했다.

2003년 9월 정권 창건 55주년을 기념하는 열병식과 군중시위에는 당초 예상됐던 신형 미사일과 전차, 로켓 등 군사장비는 등장하지 않았고, 행사 규모도 1998년 50주년 행사 때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간소화됐고, 2005년 10월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아서도 미사일이나 군사장비 등의 무력시위는 없이 열병식 후 시가행진을 벌였다.

작년 7월 개최된 군 창건 75주년을 맞아서는 미사일 부대까지 등장한 가운데 대규모 열병식과 퍼레이드를 가졌는데, 북한이 군 열병식에 미사일을 동원한 것은 1992년 군 창건 60주년 열병식 이후 15년 만의 일이었다.

북한은 올해 정권수립 60주년을 맞아서는 대규모 열병식 및 군중시위를 할 것으로 외부에서 예상했으나 노농적위대 열병식만 치렀으며, 열병식 사상 처음으로 김정일 위원장도 불참했다.

열병식 및 군중시위는 통상 김 위원장이 참석할 때 북한 국기와 ’최고사령관기’ 게양에 이어 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연설에 이어 열병과 분열, 군중시위 순으로 이어진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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