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수생들 中노동자보다 기술습득 빨랐다”

▲ 엘칸토 평양진출을 담당했던 광명성무역회사 본사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했다 ⓒ데일리NK

북한 연수생들에 대한 교육 효과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빨랐다. 전편으로 바로가기

중국에 공장을 차려 중국 사람들을 교육시킬 때 최소 3개월 정도 거쳐야 수준에 오르는데, 북한 사람들은 그것보다 빠른 2개월 정도를 예상했다. 그런데 북한 노동자들은 의외로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3주가 되면서 재단부터 완성까지 연수생만을 투입해서 작업을 진행한 다음 품평을 하기로 했다.

품평은 연수생 전원이 모인 다음 서로의 의견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여기에서 최종적으로 공장측 기술자의 의견을 듣고, 또 연수생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지적사항을 세밀히 기록하게 했다. 지적사항은 추후 돌아가서 작업할 때 참고하도록 할 예정이다.

연수생 교육 계획을 세워 철저히 집행했다. 이들을 교육시켜 평양으로 보내도 실제 제품을 생산할 때는 기계작동과 원단 처리, 재단과 제품관리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흠결이 발견되면 안 된다.

연수생들이 이러한 완벽한 공정을 위해 평양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 앞으로 평양으로 파견할 한국 기술자를 7명 차출해 중국공장에 파견하여 북한 연수생들을 직접 교육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교육이 끝난 다음 본사 기술자들을 평양에 파견할 때 더 반가움을 느끼고 어려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연수생들이 냉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서울로 급히 연락해 한국의 ‘청수냉면’을 몇 박스 보내라고 연락했더니, 구두 원자재 오는 편에 50상자가 함께왔다. 연수생 전원이 갈 때까지 먹어도 남을 정도로 많이 보내 왔다.

냉면 좋아하는 북 연수생들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저녁과 야참에(21시 30분) 교육이 끝나면 냉면 잔치를 벌였다. 연수생들은 거의 두 그릇씩 먹어 치우는데 보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다. 이 사람들은 자주 냉면을 먹는데 그 동안 못 먹었으니. 배탈 날까봐 걱정이 됐다.

추석을 하루 앞둔 15일이다. 필자도 지친 상태라 서울로 귀국해 명절에 며칠이라도 쉬고 싶었다. 쉬는 기간 평양으로 보낼 설비를 알아보고, 10월 중순경 김용운 회장과 기술자들의 방북을 준비해야 했다.

또 순평 완구공장 신축 부지 일부에 엘칸토 공장을 건설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의논도 하고, 김회장님 방북 시 이산가족 상봉도 함께 이뤄지도록 계속 연락을 하고, 필자의 봉제완구공장과 공장부지 답사계획도 세웠다. 이 모든 업무는 필자가 직접 개인 명의로 중국을 경유해 북한과 FAX 연락을 통해 이뤄졌다.

추석이 끝난 이후 20일에 다시 태창공장에 도착했다. 연수생들은 필자가 없는 동안 불편한 것이 많았다고 불평을 한다. 무슨 불편함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필자를 보니 반가워서 하는 투정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한낮 온도가 30도가 넘고, 아침 저녁에는 제법 가을 날씨처럼 서늘했다. 기숙사 방 이부자리가 좀 얇았던 것 같다.

다음날 일요일은 화창한 날씨다. 오후 3시에 교육을 마치고 시내 외출하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외출을 시킨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양자강변으로 나갔다. 바다처럼 확 트인 강. 끝이 안 보인다. 황토물이 무겁게 느리게 흐르고 있다. ‘중국은 땅도 넓다 드니 강도 넓네’라고 연수생들이 다들 감탄한다. 두 시간 가량 걸어 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공장에 돌아오니 광명성경제련합회 북경대표부의 ‘리치훈’대표의 전화가 왔단다.

무슨 일인가 전화를 했다. ‘잘 먹이고 잘 재우고 담배 많이 사주고 교육 잘 시켜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안부를 묻는다. 제화부분에서 기술을 가리키던 변종호 과장이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서글서글해 북한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가리키는 것도 확실하다.

꾸중도 적당히 잘 하고 칭찬도 인색하지 않아 그 동안 연수생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앞으로 변 과장 같은 사람들이 평양에 가서 다시 교육을 시킬 것이다. 저녁에 송별회를 했다. 비빔냉면에 땅콩과 맥주와 소주에 어울리지도 않은 안주지만 즐거운 자리였다.

엘칸토 회사 관계자들 평양 초청장 도착

식당 아줌마는 연변출신이다. 연변에 아들 하나를 둔 그런대로 조선음식을 제법 흉내 낼 정도는 됐다. 조선족이라 연수생들과 말도 비슷하고 사상도 비슷하여 친밀감을 느껴 음식은 항상 푸짐했다.

북한 사람들, 중국 조선족, 남한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은 한국계 미국인 등 이렇게 4나라의 동족이 밤늦도록 어우러져 손에 손잡고 ‘고향의 봄’ 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의 노래로 마무리짓고 박수로 그 동안의 수고를 달랬다.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하루하루 무슨 사고(도망)가 생길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나날을 보냈다. 이것도 일종의 노이로제인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전부가 내 책임이다. 북한도 ㈜엘칸토도 나를 믿고 이 일을 하는 거다.

다소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여관에 돌아가 하루 일을 반성하며, 욕심을 가져본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연수생들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좀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걸핏하면 손잡고 통일의 노래를 부를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3일 엘칸토 일행 평양방문 초청장이 Fax로 왔다. 가장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는 일이 제대로 되어 가는 것 같다. 평양 당국에서도 본 사업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굳힌 듯하다. 이젠 개인의 실력도 점검 할 겸 연수생들에게 자신의 신발을 직접 만들게 했다.

북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발이 작다. 저녁 식사 후 조선족이 한다는 이발소로 5명을 데리고 갔다. 옛날 한국식으로 한다. 마음에 드는지 잘 한다고 칭찬한다. 북한사람이라고 이발요금도 조금 깎아 준다. 숙소에 돌아오니 잘 깎았다고 뒤통수를 만지면서 다들 내일 이발소로 가겠단다. 명절 때 이발한 기분인 것 같다.

상당한 기술수준에 오른 북한 연수생들

24일은 흐린 날씨다. 그 동안의 교육에 대해 연수생들이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30년 구두제작 경험을 가진 태창공장 김 사장의 특강을 열었다. 그 동안 연수한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포장 그리고 숙소와 식당까지 Video에 담았다. 좋은 추억의 자료가 될 것이다.

27일은 공장 전체가 쉬는 날이다. 그런데 어제 연수생들이 만든 120족 중 60족이 불합격 판정을 받아 22시까지 휴식도 없이 수리 작업을 했다. 좋은 경험이다. 식당에 모였다. 소주 몇 병을 놓고 냉면을 안주 삼아 수고했다는 위로를 해주려던 참이었다.

“여러분들 정말 일은 제대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잘못 만들어진 구두도 찾아 낼 줄도 알고 이제는 기술자 다 되었습니다. 내가 최고라는 긍지를 가지고 평양가시면 평양에서도 최고기술자가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여 고생한 보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술을 한잔씩 마신 이후에 고향의 봄을 부르며 노고를 위로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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