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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자축구가 월드컵 사상 첫 8강에 올랐다. 북한은 18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2007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스웨덴에 1대2로 졌지만, 1승1무1패로 조 2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1999년과 2003년 대회에서 연이어 조 3위를 기록하며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던 북한은 ‘삼수’ 끝에 8강행의 꿈을 이뤘다. 다음 경기대상은 세계랭킹 2위이자 유럽의 맹주인 독일이다.
북한이 속한 B조는 세계랭킹 1위 미국과 3위 스웨덴이 포진한 ‘죽음의 조’였다.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아 8강에 진출한 것 만으로도 북한 축구사에 새로운 역사를 만든 것이다.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이 세계적 수준의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여자 축구를 남성화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여자 축구는 기술과 체력, 전술 운용 등에서 아직 남자 축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남자축구에 근접할 수만 있다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 북한 여자 축구가 열악환 환경에서도 좋은 선수를 조기에 발굴해 남성 못지 않은 훈련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주민들도 남한 사람들 못지않게 축구에 대한 관심이 크다. 여자축구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에서 여자 축구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은 이렇다.
북한은 중학교(6년제)에 입학하면 축구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선출하여 학교에 있는 추구소조(축구부)에서 기초를 다지게 한다. 여기에서 다시 우수한 선수들을 차출하여 각 시(군, 구역)에 있는 축구구락부(俱樂部)에서 집중훈련을 받게 한다. 이때부터 구락부에 뽑힌 학생들은 학교가 아닌 구락부로 등교하며 오직 축구만 배운다.
국제대회 우승하면 가문의 영광
구락부에서 우수한 기술력과 실력을 발휘하면 ‘4.25’나 ‘압록강’, ‘이명수’ 같은 북한의 우수한 대표 팀으로 발탁 받을 수 있다. 또 평양과 지방의 유명대학 체육 팀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본인이 희망하지 않으면 선수생활은 구락부에서 끝난다.
축구에 대한 감각과 기술만 높다고 모두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과거 80년대부터 체육도 돈이 없으면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집에서 최소한의 경비는 지원해줘야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
특히 1년에 2~4번씩 진행되는 구락부 또는 각 학교 간 지방경기대회는 구락부선수들에게 큰 부담이다. 국가의 지원이 지방 구락부까지는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경기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선수들과 학교, 또는 구락부의 몫이다.
한 번씩 큰 경기에 나갈 때면 모든 선수들이 돈을 얼마씩 모아 현지에서 개를 잡아먹는 것으로 영양을 보충하기도 한다. 여기에 식비, 장비(축구화 등 각종 용품)까지 모든 비용을 선수들과 구락부가 해결해야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재주가 정말 뛰어나면 지도원(감독)이나 학교 등에서 앞을 내다보고 지원해주는 경우는 있다.
“축구선수 북에서도 최고 대우”
북한에서도 운동선수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가문의 영광’을 이룰 수 있다. 출세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토대가 없으면 간부로 출세할 기회도 없는 북한에서 축구나 다른 체육종목의 뛰어난 감각은 출세의 발판이다.
북한은 올림픽과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좋은 처우를 보장한다. 특히 금메달을 따면 평양시에 좋은 아파트와 함께 ‘영웅’ 칭호까지 받을 수 있다. 제 7차 세계육상선수권대회(1999년)에서 금메달을 쟁취한 정성옥 선수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4년 입국한 문기남 울산대 감독(前 북한축구대표팀 감독)은 데일리NK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축구선수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우가 이루어진다. 북한 내 다른 운동선수들과 비교해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축구전문가들은 북한 축구의 강점을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문기남 감독은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의 축구는 훈련 량과 강도가 남한과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높으며 따라서 투지와 체력 그리고 기술을 겸비했다”고 얘기했다.
실제 북한은 국가대표팀은 물론 중학교 축구소조에서 구락부 선수들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여기에는 감독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북한사회의 특수성도 한 몫 한다.물론 어느 나라나 감독의 위세가 대단하지만 북한에서는 그 권위가 절대적이다.
일부에서는 여자 축구대표팀의 선전을 김정일 체제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달갑지 않다는 반응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곳 남한의 과거를 돌이켜 볼 때도 한국팀의 선전이 고난에 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이 됐다고 알고 있다. 이를 볼 때 분명 주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삶의 낙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약 북한의 여자축구대표팀이 좀 더 충분한 국제경기 경험까지 갖춘다면 더 높은 성적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은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이 지금의 여세를 몰아 독일을 꺾고 한국 남자축구가 이룬 4강 신화를 재현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