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성, 전쟁공포 정치에 신물”

▲ 계급교양관에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북한 여성

북한에서 40년을 살았던 나는 어느 한 해도 전쟁공포증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특히 여성인 나에게 전쟁공포증은 내 삶의 일상을 뒤흔드는 구체적인 위협으로 매번 다가왔다.

내 기억 속의 첫 위협은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한 아홉 살 때였다. 그때 나는 거동이 불편했던 어머니와 함께 전시용 미숫가루와 솜 장갑을 만들었고, 짬만 있으면 뒤뜰 안에 방공호를 파야 했다. 오랜 지병을 앓고 계셨던 어머니는 몸에 큰 무리가 왔지만, 전쟁에 노출될 어린 자식들 생각 때문에 자리에 누울 엄두을 못 내셨다.

76년 판문점 도끼사건, 전쟁분위기 최고조

전쟁의 위협이 가장 극도에 달했던 때는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사건 직후였는데, 내가 속해있던 학급에서도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없어질 정도로 대대적인 평양시 인구축소 조치가 있었다. 누구도 추방당하지 않는다는 담보가 없었다. 온 도시가 거대한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고 있었다.

판문점 도끼사건 이후에도 한국에서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는 2월이 되면 전쟁을 핑계삼는 북한의 공포정치는 계속되었다. 해마다 2월이 되면 전쟁공포를 이용하는 권력자들의 상투적인 주민 위협놀이가 시작되는데, 북한 주민들은 번번이 권력자들의 장단에 속아 넘어갔다.

북한 당국이 전쟁공포정치의 최상의 효과를 위해 해마다 새로운 방법들을 끊임없이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전쟁공포 심리, 정치에 이용

어느 해에는 중무장시킨 장갑차 몇 대를 동원시켜 평양 시내를 배회하게 하는가 하면, 어느 해는 방독기구와 방독약이 구비된 가방을 가족 수만큼 만들어 당위원회에 검열받으라고 주민들에게 지시했다.

온 평양 시내를 먹물 같은 어둠 속에 몰아넣는 초저녁의 등화관제 소동, 아침 출근시간의 지하철 대피소동, 한밤중의 비상소집 소동 등등 구태의연한 방법들도 약방의 감초처럼 수시로 써 먹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 사이에 전쟁공포 심리가 무뎌지는 듯하면, 150여 대도 넘는 인민군 탱크들을 동원하여 평양 시내를 통과하게 하는데, 이때는 아무리 간이 큰 사람이라도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기에 충분했다.

출산 앞둔 여성들의 전쟁공포

이런 경황 속에서 출산을 앞둔 결혼여성들의 경우 엄청난 전쟁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 중에 출산을 하게 되지나 않을까’, ‘아기가 기저귀도 떼지 못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평양 지하철의 방공호에서 하루 두세 번씩 어떻게 기저귀를 빨아 말리나’ 하는 근심 때문에 임신을 했거나 방금 출산한 여성들은 얼굴의 살이 부어 오를 지경이었다.

내 여동생이 아기를 낳았을 때 당사자인 동생은 물론 언니인 나도 이런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마침내 조카가 기저귀를 떼었을 때 우리 자매는 ‘이제 전쟁이 일어나도 기저귀 빨아야 할 근심은 없겠구나’라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이런 근심은 내 주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평양에 있는 내 문학친구는 아기를 낳고 나서 반전(反戰)을 주제로 하는 6편의 시(詩)를 창작하였는데, 그 속에서 가장 심금을 울리는 시는 ‘아기엄마가 부르는 노래’였다. 이 세상에 아기와 엄마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쟁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 또한 아기를 낳고 1년 넘게 ‘전쟁공포’에 시달렸는데,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이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북한의 권력자들이 전주민들의 순종심 배양을 위해 갈수록 극대화시키는 전쟁위협 소동! 이러한 소동 속에서 ‘축복과 희망’으로 칭송받아야 할 새 생명의 출생이 ‘고통과 불안’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최진이 前조선작가동맹 시인

*푸에블로호 사건 : 1968년 1월 23일 오후, 미 해군의 전자첩보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던 중 북한군에 의해 나포되었다. 북한이 P-4 초계정 네 척과 미그기 두 대를 동원하여 진행한 나포 과정에서 미국 병사 1명이 사망하고 나머지는 전원 억류되었다. 이후 82명의 생존 승무원과 시체 1구는 판문점을 통해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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