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성지휘자 허문영의 ‘음악명문가’ 자랑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여성 지휘자인 허문영(44)씨가 재미교포 온라인 매체인 ’민족통신’과 인터뷰에서 음악가문으로 알려진 자신의 가족사와 조선국립교향악단의 현황 등 북한 음악계의 일단을 자세히 소개했다.

28일 민족통신에 따르면, 허씨는 뉴욕필 교향악단의 평양 공연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라의 국보”라고 칭한 아버지 허재복씨가 한국전쟁중이던 1951년 레닌그라드 음악대학에 유학한 뒤 국립교향악단 지휘자와 만수대 예술단 수석지휘자를 지냈으며, 1977년 8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허재복씨는 일제시대 중국 용정에서 태어나 허문영씨의 작은할아버지한테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국내 탈북자들에 따르면, 조선국립교향악단 초대 단장을 지낸 허재복씨는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음악 수재”로 유명했으며, 한때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행동”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혁명화(처벌)” 과정을 거치기도 했으나 김정일 위원장의 각별한 신임으로 복귀했다.

허문영씨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도 평양음악무용대학을 나와 아버지가 공부했던 레닌그라드 음대에 유학, 아버지의 스승에게서 지휘공부를 했다고 설명하고, 어머니 허선욱씨도 “우리나라(북한) 최초의 하프 연주자”로 활동했으며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대학에 유학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사망 전까지 조선국립교향악단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2000년 8월 남북정상회담 축하차 악단을 이끌고 서울을 다녀가기도 한 허이복씨는 허문영씨의 작은 아버지다.

허씨는 또 “13살 먹은 내 딸(최은혜)이 우리 가정의 대를 이어갈 것으로 확신”한다며 “딸이라서 그런 것보다 내가 음악 전문가로 내 딸을 볼 때 유치원 다닐 때도 하나를 대주면 열을 알았다”고 딸의 음악재능을 자랑하고 “피아노를 배워왔는데 지금은 작곡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으며, 3대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이어갔다.

허씨는 자신의 경력에 대해 유학에서 귀환한 뒤 만수대예술단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다 2005년 국립교향악단 지휘자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허씨에 따르면, 북한의 국립교향악단의 규모는 120명 정도에 5명의 지휘자가 있다.

이중 ’인민예술가’ 김병화(72)씨는 원로 지휘자로 재일동포 출신. 일본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 “한 러시아 연주자가 하도 잘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을 포기하고” 1960년대 북한으로 건너가 지휘를 공부했으며, 일본계 부인도 성악가로서 “음악 광신자”라는 것.

이 악단의 지휘자 5명은 허, 김씨 외에 40대 초반의 리철웅, 역시 40대 초반의 ’공훈예술가’ 김호윤, 그리고 “이제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지휘자” 등이다.

허씨에 따르면, 리철웅 지휘자는 “내심적(내성적)이며 정확성이 특징이고, 김호윤 지휘자는 지휘기법에서 아주 정확하고 단원들을 편안하게 하는 지휘자로 특징이 있다”

이 악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인 최기혁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대립으로 캐나다로 망명한 뒤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세워 세계적인 태권도 보급에 나섰던 최홍희(2002년 평양서 사망)씨의 부인쪽 조카라고 민족통신은 전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평양공연 협의를 위해 방북한 뉴욕필의 자린 메타 사장은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아리랑’과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연주를 감상하고 수준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리랑’을 갖고 서방 나라들에 나가 공연한다면 조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며 악단이 미국을 방문하기를 희망했다고 허문영씨는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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