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성들 출산 문화 이대로 좋은가?

북한에서는 출산여성들을 위한 여러 가지 혜택을 실시하고 있다.


근로자들을 위한 노동법에 출산 전 후 여성들에 대한 휴가 규정이 따로 정해져 있으며 출산여성들을 위해 각 도에 산원(産院)을 꾸렸다. 평양시에는 현대적인 평양산원이 있다.


북한 노동법에는 출산 전후 직장인 여성들을 위해 휴가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산전 60일(두 달)과 산 후 90일(석 달)로 모두 150일 정도 휴가를 주게끔 되어 있다.


또 군(郡) 병원들에는 병원마다 부인과가 따로 있다. 임신 여성들에 대해서는 임신이 되면 병원에 등록하고 정상적으로 검진을 받도록 하는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특별히 나쁜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출산 전 병원 출입을 될수록 하지 않는다.


이곳 여성들은 임신이 되면 일단 몸부터 조심하고 때가 되면 병원에 가서 각종 검진을 하고 병원에서 의사가 출산을 지켜본다. 출산 후에도 조산원에 들어가거나 몸조리를 하도록 큰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북한 여성들은 자신의 몸관리와 아기 상태 검진에 큰 관심을 두지 못한다. 일부 여성들은 해산하는 날이 되어서야 병원에 가 등록하는 여성들도 있다. 출산에 신경을 돌릴만큼 돈과 시간의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북한에는 여성들의 부인과 질환도 많은 편인데 이를 무시하고 임신과 출산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골 여성들은 군 병원까지 나가야 하는데 농사일로 바쁜데 언제 병원까지 갈 시간과 돈이 있냐며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해산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단지 쌍둥이나 세쌍둥이와 같은 특별출산인 경우 혹시나 위험을 감수해 병원으로 간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거리에 가면 1980년에 건설한 평양산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산모들과 갓 태어난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종합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13층의 본관과 6동의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은 이 산원을 대내외에 널리 선전하며 북한을 찾는 외국인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처럼 현대적이고 웅장한 평양산원에는 아무 여성이나 모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병원에는 일단 권력을 쥔 간부들의 가족이나 이들과 인척관계이거나 안면관계가 있는 사람들, 또는 이 병원에서 봉사하는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직원들과 안면관계가 있는 사람들 정도가 출입할 수 있다. 


단 평범한 여성이라도 세쌍둥이 같은 특수출산을 하게 될 여성들은 출신과 조건에 관계없이 본인이 희망하면 무조건 입원시킨다.


북한에서는 세쌍둥이인 경우 나라가 흥할 징조라며 모두의 관심 속에 평양산원으로 후송해 아이를 낳는다. 여자 아이가 태어날 경우 금반지를, 남자 아이는 은장도를 수여하고 언론매체들을 통해 널리 소개 선전한다. 또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국가가 이들의 교육을 전적으로 부담한다.


북한의 시골에서는 산파(출산을 돕는 여성)의 인기가 대단하다. 대체로 간호원이나 의사직업에 종사하다가 시골에 출가하여 살고 있는 여성들이 산파를 하고 있다. 이는 집에서 해산하다가 갑자기 출혈을 하는 등의 사태를 대비해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여야 산모들이 마음 놓고 해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출산에 관한 것들은 무료라고 하지만 근래 들어 먹고살기 힘든 것은 의사들도 마찬가지라 이들의 비행도 한심하다.


환자들에게 친절한 조산원들은 산모에 대해 따뜻하게 대하지만 그렇지 못한 의사, 조산원 또한 적지 않다.


2009년 2월에 입국한 김모 여성(35세)은 북에서 첫 출산 시 도(道) 산원에서 해산했다. 그녀는 “해산 전 날 점심 경부터 진통이 왔는데 저녁이 되도록 해산하지 못해 밤새도록 진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새벽 3시경에 아이가 곧 나올 징조를 보여 옆에서 딸의 등을 쓸어주던 어머니가 급히 의사실로 달려갔지만 당직의사나 조산원은 ‘아직 멀었다’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무 급한 나머지 김 씨의 어머니가 아이가 머리를 내밀었다고 아우성을 치자 그 때야 의사와 조산원이 우물우물 하면서 병실로 왔다고 한다. 


당직의사를 데리고 김 씨의 어머니가 해산실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아이의 머리가 나오기 시작한 상태였고 첫 출산이여서 아무 경험도 없는 김 씨는 혼자 출산대 위에서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만약 김 씨가 이들과 어느 정도 면식이라도 있거나 먹을 것이라도 한 보따리 갖다줬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김 씨가 자기들과 아무런 인연도, 관계도 없는 그냥 평범한 환자여서 무관심하게 대했던 것이다. 


무사히 아이를 낳았으나 의사나 조산원의 보호도 없이 출산을 시작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너무 무서웠다고 털어놓았다. 그 후 남편이 둘째를 낳자고 말을 떼기 무섭게 성을 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아내의 출산 시 남편이 옆에 있으면 신짝 집어던지고 남편 머리를 쥐어 뜯는다고 한다. 그만큼 출산으로 인해 겪는 여성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한다.


북한에서 임신 여성에 대한 각종 혜택은 말과 제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도 조선시대 출산 문화의 한계에 갇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북한 여성들도 좀 더 안정하고 청결한 조건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마음 놓고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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