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대생들 훈련중 ‘앵두나무 습격’ 사건 벌여

북한에서 보낸 필자의 지나간 청춘시절 중 가장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학시절이다.


아직은 여리고 인생의 세파에 부대끼지 않았던 19살 홍안의 대학 2학년시절. 북한의 대학생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게 되어 있었던 교도대 군사훈련의 추억은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생생한 추억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중학 시절 붉은청년근위대에 입대해 ‘군사훈련’을 받아본 경험이 있지만 성인들의 군복무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서지 않았던 그해 4월 20일 대학측은 우리 여학생들에게 교도대 훈련에 복무하라고 통지했다. 


대학생교도대의 교방(교육훈련)은 연중 2회, 4월 20일과 10월 20일에 진행되는데 우리는 여름기수로 4월에 교방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간은 6개월이다. 교방하던 첫날 현역군인인 사관장으로부터 군복과 모자를 비롯한 복장을 공급받았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에게 군복을 공급했던 현역출신 여자 사관장이었다. 날카로운 콧마루에 자그마하면서도 예리하게 치째진 눈, 조각가의 손으로 빚은 것처럼 직각인 양 어깨와 역시 그와 다름없이 직선이면서 귓불 3㎝ 아래서 찰랑이는 짧은 단발머리, 훈련을 끝내고 대학에 돌아온 후에도 생각만 해도 소스라쳐 놀랄 정도였던 거세면서도 강한 중저음의 쇠소리가 나던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교도대 훈련 기간 한순간도 지치지 않고 우리 대학생들의 머리위에 채찍처럼 떨어지군 하던 그의 목소리와 티끌만한 에누리도 없어보이는, 엄격했던 그의 모습은 틀림없는 ‘호랑이’의 모습이었다. 그에게는 김선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지만 교도생 전부가 훈련이 끝나고 대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를 ‘호랑이 사관장’, ‘범사관장’이라고 불렀다.


교도대 훈련 기간 전부가 청춘시절에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많이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농장 과수반 앵두나무 습격사건이다.


당시 필자가 근무했던 중대는 야산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중대 병실 바로 앞에 앵두나무가 줄비한 ‘과수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한 판 일을 치렀을 때는 6월 중순, 그 때 온 중대는 온통 푸르고 빨간 앵두나무에 둘러싸이다시피 해 마치 화원속 궁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가 밤 10시부터 12시 근무를 끝내고 병실에 돌아가니 이 날 따라 사관장은 지휘부에 가고 다른 현역군인들 역시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밤잠도 못자고 근무를 서고 금방 들어와 속도 쿨쿨하던 우리는 보초장의 눈짓에 따라 동료들의 바지로 자루(바지 가랭이를 묶어 맨 것)를 만들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우리들은 현역군인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는 사이에 ‘앵두 습격전’을 벌리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제일 날쌔고 담이 큰 세명의 대원들로 선발된 ‘습격조원’들은 곧 비옷과 바지자루를 하나씩 짊어지고 병실을 나가 과수원을 둘러싼 가시철조망으로 다가갔다.


먼저 철조망 밑 부드러운 흙을 손으로 파 제껴 한사람씩 기여 들어갈 수 있는 구덩이를 팠다. 다음 거기에 가지고 나간 비옷을 깔고 한 사람은 가시철조망을 쳐들고 한사람씩 발랑 발랑 기여 들어갔다. 야밤 삼경이라 과수밭을 지키던 경비원도 잠 들었는지 아무 기척 없었다.


들어간 세 명의 대원들은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큰 바지자루 세 개를 다 채우려면 한 알 두 알 따서는 어림도 없어 앵두가 잔뜩 달린 가지들을 뚝뚝 꺾어 ‘자루’에 정신없이 넣었다. 그런 식으로 하니 30분도 안되어 자루 세 개가 모두 찼다.


들어갔던 세 명의 대원은 다시 철조망 밑으로 돌아와 밖에서 기다리던 대원에게 자루들을 먼저 내밀고 급히 기여 나온 후 구덩이를 흔적 없이 묻어 놓았다. 병실에 들어와 따가지고 온 앵두를 쏟아놓고 보니 가지마다 먹음직한 앵두가 가득 달려있어 푸짐한 오찬준비가 마련되었다. 경비원들에게 들키지 않고 소리 없이 진행된 ‘앵두 습격전’은 대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 날 우리는 ‘선주놈'(지휘관이나 현역군인을 말함)이 없는 세상에서 희희 락락하며 즐거운 ‘파티’를 벌렸다.


그날 밤 중대의 익살꾸러기가 선창으로 불렀던 노래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선주놈이 없는 세상 얼씨구 좋구나
너도 나도 먹어보자 맛 있는 앵두다
선주놈 없는 세상 얼씨구 좋네 좋아
우리끼리 있을 때나 마음껏 즐기세


아무런 대책 마련 없이 벌인 모든 일들이 그렇듯 이날 밤의 ‘앵두 습격전’도 다음날 바로 큰 문제를 일으켰다. 중대의 아침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과수반장이 헐레벌떡 중대장을 찾아왔다.


“아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앵두를 알로도 아니고 가지채로 뚝뚝 꺾어 따가다니 이게 제정신이요? 당장 누가 그랬는지 잡아주소” “무슨 기집애(여자애)들이 이렇게 세차답디까? 세상에 살다 살다 이런 도깨비 같은 여자들은 첨 보느만”…


그러자 중대장(27살난 처녀군관이었음)이 왈: “간밤에 보초장 누구지?” “넷, 접니다” “어젯밤 니들 앵두 습격했어?” “뭔 앵두말입니까? 저희들은 그런 일 없습니다” 입 빡 씻는 보초장의 당돌한 대답소리…


“반장동지, 우리 애들 대학에서 공부만 하던 얌전한 애들인데 도적질 하래도 못합니다. 혹시 주변 아이들이 앵두 먹고 싶어 들어온 게 아닐까요?” 외려 대원들을 두둔하는 중대장의 말에 반장아저씨 가슴만 풀떡거리며 황소숨 쉬다 “이 놈의 자식들, 그저 잡기만 해봐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혼자 으름장만 놓으며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다.


뒤에 선 우리들은 소리 내어 웃지도 못하고 눈을 쨍긋거리며 지들끼리 옆구리 쥐어박고 난리 났건만 중대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중대 상학준비’구령을 준다. 먹고 버린 앵두나무 가지를 땅속에 묻어버리길 잘했지 아마 현역군인들이나 군관들, 더욱이는 독같이 성이 올라 펄쩍펄쩍 뛰는 반장아저씨가 봤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말만 ‘얌전둥이’인 우리들의 서리는 앵두 뿐이 아니었다.


‘직일 총 근무’를 수행하는 날이면 신발도 벗지 못하고 군복을 입은 채 탄약을 장진한 고사총(14.5㎜구경) 옆에서 꼬박 밤을 새야 한다. 그런 날이면 지루한 여름밤을 보내기 위해 주변 농장 옥수수 밭으로 살살 기여 들어가 옥수수를 몰래 따가지고 돌아온다.


그리곤 밤새 탄약고 안에서 옥수수구이를 해먹던 일, 푸름이 밝아오는 새벽어스름에 눈만 반짝이는, 얼룩덜룩 검뎅이 묻은 얼굴을 서로 손가락질하며 좋아라 깔깔대며 즐거웠던 순간들…모두 잊지 못할 추억들이다.


사실 대학생들은 현역군인들과 다르다. 대학가에서 공부만 하는 책상머리 얌전한 샌님들이 현역군인출신들보다 생활력도 강하지 못하고 특히 인민군대가 생명처럼 여기는 ‘야간작업’은 엄두도 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대학생 처녀들에게 교도대 생활은 고상하고 탐구적인 자세만을 요구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세계를 탈출해 잠시라도 강한 군사규율과 훈련, 또 ‘야간작업’과 같은 여러 가지 경험들을 직접 체험하며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정숙한 여성’들에게 다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교도대 시절의 이러한 즐거운 추억들은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에도 언제나 머릿속에 떠올라 순간이나마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하는 소중한 한 토막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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