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8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해 안보리 결의 2321호가 규정한 유엔 회원국 자격 및 특권 정지 조치 등 특단의 조치를 고려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CD·Conference of Disarmament)에서 북한이 김정남을 신경작용제 VX로 독살한 데 대해 “북한이 화학무기를 제3국에서 표적살해의 수단으로 사용한 건 국제사회에 대해 명백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제사회가 지난 수년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의도치 않게 북한 화학무기의 중대한 위협을 잊고 있었다”면서 “충동적이고 예측불가하며 호전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한 북한 정권은 언제 어디서든 그 누구에게도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장관은 또 “북한은 전국에 걸쳐 VX를 포함한 화학무기를 몇 그램이 아니라 수천 톤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면서 “북한이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우려가 이제 화학무기 분야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우리 군이 발간한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량은 2500~5000톤에 달한다.
윤 장관은 또 “북한이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가입하지 않는 것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뒤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다 적발되자 1993년 NPT를 탈퇴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화학무기 사용은 국제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CD 회원국인 북한 정권 인사들이 다른 CD 회원국 영토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서 “금번 말레이시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과 같은 책임규명의 시대에 규범파괴자((norm-breaker) 북한에 대해서 무관용의 자세로 책임규명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면서 “모든 관련 지역 포럼과 유엔, CD를 포함한 국제포럼에서 특단의 조치를 진지하게 고려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윤 장관은 유엔 회원국 자격 정지 여부와 CD 회원국 자격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재 유엔 안보리는 결의 2270호를 통해 북한이 모든 생화학무기 및 관련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CWC 당사국들도 협약 제12조를 인용해 이번 사건을 유엔 총회 및 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다.
윤 장관은 “연쇄 규범파괴자에게 이 권위 있는 규범을 만드는 회의장에 앉아있을 자격을 부여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와 북한 내 모든 생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CD 회원국 모두가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회의에 참석한 주용철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은 “결코 화학무기를 보유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의혹과 가정을 모두 거부한다”고 반박했다. 북한이 유엔에서 김정남 관련 사건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용철은 또 한국 정부가 북한 정권의 화학무기 위협을 비판하면서 유엔 회원국 자격 정지를 촉구한 데 대해 “비열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강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