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억류 여기자 사건 이례적 재판 회부

북한 당국이 억류한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해 “불법 입국과 적대행위” 혐의를 “확정”해 재판에 기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밝힘으로써 이 사건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과 미국간 석방교섭 내용에 따라선 조기석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북한이 자신들의 형사법에 따른 사법절차를 밟기 시작한 만큼 최소한 재판에서 형 선고까지는 끌고 가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앞두고 북미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이들 여기자 2명은 북한이 미국의 대북 강경대응을 억제하는 ‘인질’ 성격도 띠게 됨으로써 북한이 로켓 발사의 후폭풍이 가라앉을 때까지 이 사건을 북한 국내법에 따라 다룬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활용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당국이 여기자들에게 적용한 ‘적대행위’ 혐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지난 2004년 4월 개정된 북한 형법을 보면 제3장 69조에 “다른 나라 사람이 조선민족을 적대시할 목적으로 해외에 상주하거나 체류하는 조선사람의 인신, 재산을 침해하였거나 민족적 불화를 일으킨” 경우 ‘조선민족 적대죄’를 적용토록 돼 있어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죄는 “5년 이상 10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하도록 돼 있고 “정상이 무거운 경우”엔 10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을 받도록 규정돼 있어 중형에 해당한다.

여기에다 형법 제7장 233조는 `비법국경출입죄’에 대해 “2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3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북한 당국이 탈북자 문제 등을 취재하던 이들 여기자에게 ‘간첩죄’가 아닌 ‘적대행위’와 ‘불법입국’죄를 적용한 것도 북한 나름대로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 한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끈다.

북한 형법 3장 63조는 ‘간첩죄’에 대해 “공화국 공민이 아닌 자가 우리나라에 대한 정탐을 목적으로 비밀을 탐지, 수집, 제공한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적대죄나 간첩죄나 형량은 같기 때문에 형량 측면에선 별 의미가 없는 셈이다.

북한의 징영형은 노동단련형과 노동교화형으로 구분된다.

노동단련형은 형량(6개월부터 2년)이 낮은 범죄자를 각 도마다 1개씩 설치된 이른바 ‘집결소’라고 불리는 노동교양소에 보내 노역을 부과하는 것이다.

노동교화형은 노동교화소에 수감된다. 여기에는 살인, 강도, 절도, 강간 등 일반 형사범과 사기 및 횡령 등 경제범중 형량이 2년이상인 중범이 해당된다. 노동교화소는 각 도에 1-2개 정도 주로 탄광 등의 주변에 설치돼 있어 노동 강도가 센 작업을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입장에선 이번 사건이 북한의 열악한 인권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반김정일 투쟁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는 최대의 아킬레스건인 탈북자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한 엄격한 처리로 서방 언론사들이 북한에 부정적인 현장 취재에 나서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도 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 당국이 억류 여기자들에게 중형을 적용하더라도 반드시 실제로 집행하겠다는 생각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은 이번 사건을 오바마 새 행정부와의 관계구축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호재로 활용하면서 전반적인 북미관계 진전정도에 따라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간 대화 진전에 따라 여기자들로부터 시인과 사죄, 재발방지에 대한 미 당국의 약속을 받아낸 뒤 북한의 ‘인도주의적’ 입장을 과시하며 석방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과거 간첩혐의를 받았던 에번 헌지커씨도 북미간 교섭 결과로 풀려났는데, 억류 여기자 사건도 유사한 양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한편 이번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사법체계와 국제법을 따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어 종래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억류 나흘만인 지난 21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여기자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한 뒤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해 혐의가 확정됐으므로 재판 기소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북한 나름대로 ‘절차’와 ‘투명성’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조사과정 영사접촉, 대우 등은 유관 국제법들에 부합되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실제 북한 당국은 미국을 대신해 스웨덴 대사관 관계자가 여기자들을 접견토록 허용했다.

법무법인 렉스의 한명섭 변호사는 “이번 사건처럼 북한에서 발생한 남한 주민이나 외국인의 범죄 혐의에 대해 북한 당국이 재판을 위해 정식 기소한 사례가 이슈화돼 알려진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근무 당시 남북교류협력법, 금강산.개성 출입체류 규정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북한이 과거 벌금을 매긴 사례는 몇건 있으나 정식 기소해 재판을 통해 벌금형을 내린 게 아니라 일종의 과태료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벌금을 형벌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에선 대부분 벌금형이 없고 벌금은 우리로 치면 행정처벌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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