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어린이에 실질적 도움 주려 노력”

▲ 앤 베너먼 ⓒ 동아일보

(문화일보 2006-4-4)
가난과 기아, 질병으로 고통받는 전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유니세프는 2차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설립된 후 지난 60년간 전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글로벌 수호천사’로 활동해 왔다. 우리나라도 반세기 전엔 유니세프의 지원을 받았지만 이젠 수혜국에서 기부국으로 당당히 위상이 전환됐다. 조지 W 부시 1기 행정부에서 농무부장관을 지낸 뒤 유니세프로 옮긴 앤 베너먼 사무총장을 뉴욕에서 만나 국제어린이 구호활동 일선에 나선 그의 요즘 생각을 들었다.

미국 농무부 최초의 여성장관직을 마무리한 뒤 유니세프 사무총장이 된 앤 베너먼(56)은 이혼경력이 있는 무자녀 독신여성이다. 그런 베너먼이 어린이 국제기구인 유니세프 수장으로 옮겨올 때 안팎의 저항이 적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낙하산 인사인 데다 무엇보다 그의 경력이 어린이구호사업과 무관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너먼 사무총장은 특유의 뚝심과 친화력으로 안팎의 부담스러운 분위기를 이겨냈고 ‘유엔산하 국제기구 대표들 중 가장 열정적으로 일하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5월1일 유니세프 사무총장에 취임한 뒤 지난 2월까지 아프리카 등 22개국을 현지답사하면서 세계 각국 정부 및 국제기구와 연대해 어린이 빈곤 및 질병 해결을 위한 방안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지난 3월 7일 오전 유니세프 본부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검은 코트를 입은 한 중년여성이 무거운 서류 자료를 한아름 안고 급하게 올라탔다. 자세히 보니 베너먼이었다. 인사를 건네니 “유엔본부에서 열린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의 긴급 아침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인데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했다”며 활짝 웃었다. 꽃샘추위 탓인지 그의 볼은 발갛게 상기됐지만 표정엔 자신감이 넘쳐났다. 유니세프 수장 베너먼과의 이날 인터뷰는 이렇게 엘리베이터 대화에서부터 시작됐다.

-유니세프는 전세계 어린이들의 수호천사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해 5월 유니세프 수장이 된 후 활동을 소개한다면.

“유니세프를 세계 어린이들의 수호천사로 규정한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멋진 표현이다. 지난해 5월부터 유니세프 사무총장으로 일하기 시작하며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어린이들의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말라리아는 어린이들을 사망으로 이끄는 최대의 적이며, 에이즈 문제도 심각한 상태다. 지난해 유니세프는 ‘어린이를 위한 연대’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는데 어린이들의 에이즈 모태감염 예방 등이 주요내용이다. 또한 어린이 인신매매, 아동병사, 어린이 성착취 행위 등을 막기 위한 활동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그는 유니세프의 총책임자답게 이어 세계 어린이들 실태를 설명했다. 세 명 중 한 명은 화장실 등 위생시설이 없는 집에서 살고, 6명 중 한 명은 기아에 시달리고, 7명 중 한 명은 의료혜택 사각지대에서 산다는 통계를 설명했다. 또 매일 1800명의 어린이들이 부모로부터 에이즈에 감염된 채 태어나고 있으며, 더 심각한 것은 취학연령에 있는 세계 어린이 1억1500만명이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매년 120만명의 어린이들이 밀거래되어 위험노동이나 향략산업에 팔려간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니세프 사무총장으로서 어떤 분야에 주력할 생각인가. 전임자인 캐럴 벨러미 전 유니세프 사무총장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것인가.

“내가 전임자와 어떤 차별성을 가질 것이냐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어떻게 하면 구체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인가, 어떻게 하면 국제 어린이보호에 있어 커다란 진보를 이룰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리더십을 극대화해서 저개발국 어린이들을 질병과 빈곤, 기아에서 구해내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성과다. 이를 위해 나는 각국 정부, 유엔기구들과 긴밀한 협조를 추구하고 있다. 구체적 성과를 얻기위한 파트너십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장관으로서의 경험이 그런 일을 하는 데 유용한가.

“지난해 내가 유니세프로 올 때 몇몇 사람들은 농업과 어린이 문제가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고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1980년대 중반 농무부에 들어온 이후 대부분 국제협력, 국제정책 분야를 맡았다. 농무부는 개도국 어린이의 영양실조를 막기 위해 개도국 학교에 대한 급식 프로그램, 어린이 긴급구호 프로그램 등을 지원해 왔다. 이것은 유니세프의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농무부장관 경험이 그대로 유니세프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긴가.

“물론이다. 농무부 일은 ‘누구도 식량없이 못산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유니세프에서도 식량문제는 핵심이다. 어린이 기아와 영양실조 등을 막는 것은 유니세프가 집중하고 있는 중요한 핵심사업 중의 하나다.”

-조직운영에도 유사성이 있는가.

“농무부는 직원이 10만명, 1년예산이 1000억달러에 달하는 거대조직이다. 기업으로 치면 미국에서 7번째 규모의 거대 공룡기업이다. 여기에 비하면 유니세프는 작은 조직이다. 전세계 157개국에 지부가 있지만 글로벌 스태프를 모두 합쳐봐야 1만명에 불과하고 예산도 20억달러 정도다. 하지만 조직운영은 그리 다르지 않다. 큰 조직을 운영하려면 정책과 예산, 인사, 조직운영방향 등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유니세프 사무총장으로서 남북한의 어린이 실태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은 수혜국에서 기부국으로 위상이 바뀌면서 유니세프에 많은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 북한의 경우 어린이 영양실조나 보건, 교육면에서 아주 취약한 상태여서 아직도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인도적 지원 대신 개발지원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어린이 지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북한이 어떻게 주장하든 간에 상당히 많은 수의 북한어린이들이 긴급지원을 받아야 할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가능한한 중립적인 상태에서 북한 어린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나는 아직 북한 당국자들과 어떤 직접적인 대화도 하지 않았지만 북한 당국이 이해관계를 떠나 어린이 영양실조 등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길 바랄 뿐이다.”

-당신의 경력을 보면 앞만 보며 달려온 사람 같다는 인상을 주는데 20, 30대 시절부터 인생의 목표에 대한 뚜렷한 생각이 있었는가.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고, 삶의 고비에서 사람들은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다. 또 그 길이 종국적으로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남들은 내가 성공을 향해 달려왔다고 볼 수 있겠지만 내가 뚜렷한 계획을 갖고 한 방향으로 매진한 것은 아니다. 누구도 자신의 삶에 대해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 못할 것이다. 다만 긍정적인 자세를 갖고 멀리 보며 유연한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경력은 성공한 여성의 전형으로 보인다. 성공한 여성으로서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자신의 삶에 대해 모험적이 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요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사는 여성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남녀가 동등하게 교육 기회나 직업 선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학교졸업 후 하나의 직업에 만족하고 안착하기 전에 좀더 자신을 격려하고, 더 넓은 세상의 흐름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또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현재 선진국에서 누리는 그런 기회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그런 교육 기회, 직업선택의 기회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개발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공부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평생 불리한 위치에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에는 아직도 투표권이 없이 사는 여성이 많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도 너무 많다. 세상에 태어났다면 당연히 누구나 교육을 받고, 인간으로서 이상을 추구하며 살 수 있도록 여성들이 대우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