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후 북한 조선중앙TV에 이춘희(사진) 아나운서(방송원)의 뒤를 이어 새로운 20대 여성으로 보이는 아나운서가 등장해 누리꾼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이 젊은 방송원은 커다란 눈, 동그란 얼굴의 단아한 외모와 무엇보다 이춘희와 달리 비교적 차분한 말투 때문에 ‘호감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선 김정일 시대 이춘희가 간판 방송원이었다면 김정은 시대에 새로운 간판 여성 아나운서가 등장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전(前) 조선중앙TV 기자·작가 출신 장해성(1996년 입국) 씨에 따르면, 조선중앙TV의 간판 방송원은 경쟁이 치열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조선중앙방송 TV 방송원이 20여 명, 라디오 방송원이 100여 명에 이르지만 그 중 연차와 공훈(功勳)이 많고 출신성분이 좋아야 간판 방송원이 될 수 있다.
장 씨는 18일 데일리NK와 통화에서 “‘간판’으로 고정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행정직·지방방송 등 타 부서에서 순환근무를 한다”면서 “만약 김정일과 같은 지도자의 칭찬 한 마디라도 들으면 출세가도를 달린다”라고 설명했다. 또 “시청률·여론조사가 없으니 직원들의 평가기준은 김정일의 말 뿐”라고 강조했다.
이춘희는 1980년대 중반, 김정일의 “방송을 잘 한다”는 칭찬 한 마디에 김정일 관련 소식을 가장 많이 방송하는 1호 방송원이 됐다. 그는 김정일의 ‘은총’ 덕에 정년을 훌쩍 넘긴 일흔의 나이에도 간판 방송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중앙TV 방송원이 되려면 일단 평양연극영화대학 방송과를 졸업하거나 전국화술경연대회에서 입상해야 가능하다. 평양연극영화대학 방송과에서 매년 배출되는 졸업생은 11, 12명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서 중앙방송 방송원 양성반에 들어가는 사람도 4, 5명뿐이다. 이때 실력도 중요하지만 배경에 따라 중앙방송 방송원으로 선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지적이다.
전국화술대회를 통해 조선중앙방송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쟁률은 더 치열하다. 매년 150여명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지방방송의 방송원·인민군 방송원·대남방송요원 등이 경연을 벌인다.
경연 참가자들은 자신의 원고를 직접 작성·암송해 대중들을 감동시켜야한다. 선전선동부·조선중앙방송국 관계자·관계 예술단 일꾼 등으로 구성된 5명의 심사단은 참가자들의 대중 호소력을 평가해 15명 내외로 1차 선발한다.
이렇게 선발된 입상자들은 조선중앙방송의 화술전문가들에게 1년 간 교육을 받는다. 예비 방송원들은 ‘화술론’이라는 교육을 받는데, 이 교본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언변의 ‘기백'(氣魄)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최종적으로 한 두 명만이 조선중앙방송의 방송원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이 가운데서도 이춘희처럼 김정일 같은 ‘권력자’의 조력을 받으면 조선중앙TV의 ‘9시보도’ 같은 비중 있는 보도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선발된 조선중앙TV 방송원들에 대한 처우는 중앙당 간부급이다. 특히 이춘희 같은 인민·공훈 방송원들은 방송국 간부를 능가하는 대우를 받기도 한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장 씨는 “간판 방송원들에게는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꿩·노루고기·양복용 옷감 등의 부식·공산품을 당에서 직접 제공한다”면서 “또한 이들은 김일성·김정일 생일, 당 창건일, 공화국 창건일까지 1년에 네 차례 걸쳐 상자 두 개 분량의 선물을 받는다”고 말했다.
북한 지방방송의 방송원 출신인 한 탈북자도 “인민·공훈 방송원들은 평양에서 가장 생활여건이 좋은 창광거리에 난방·온수가 끊기지 않는 집을 배정 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