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써비차 통제, 결국 시장혼란으로 이어질 듯






▲북한 주민들이 써비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자료사진)ⓒ데일리NK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서 동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써비차’는 북한 경제에 거대한 역할을 미치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침체에 빠진 북한 경제는 2000년대 이후 중앙당소속 외화벌이 기관들과 군수부문, 내각 산하 일부 특종 생산단위들을 포함하는 국가경제와 북한 주민들의 생활유지를 위해 운영되는 시장경제로 분화됐다.


주민 시장경제는 생활용품의 직접적 거래 및 판매가 진행되는 소매업과 시장에 물품을 공급하는 도매업, 소비품을 자체 생산하는 개인업, 지역 간 물품을 운반하는 운송업 등 복잡한 구조로 발전해갔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 기업소, 간부, 일반주민을 모두 아우르며 광범위한 유통망을 형성했다. 이 유통망의 발생과 확산을 불러온 것이 바로 ‘써비차’였다.


써비차는 1990년대 중반 고사 직전에 내몰린 철도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당시에는 정상적인 열차표 구입이 불가능해졌고, 하룻밤이면 갈 길을 일주일이 되도록 도착하지 못했으며, 넘쳐나는 인파로 인한 살인·강도·절도 등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자 산발적으로 써비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장거리 운행을 떠나는 기업소의 차량들이 차의 빈자리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하다 식량난으로 인한 이동수단에 대한 수요 급증으로 본격적인 호객행위가 시작됐다.


써비차의 주요 이용자들은 북한에서 ‘달리기’라고 불리는 장사꾼들이다. 이들이 거래하는 품목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차떼기’라고 불리는 도매상은 아예 화물차를 전세내거나 철도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고 화물열차로 물건을 운반한다.


지금까지는 써비차 자체에 대한 단속보다는 써비차가 운반하는 물품 중에 ‘국가 통제품목’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단속이 주를 이뤘다. 생필품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군수품(군복, 군화 등)에 대한 매매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의 철도 운행율을 꾸준히 회복세를 보였으나 2004년부터 상설시장이 공식 등장하면서 운송수단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북한 내에서 생산되는 주민생활용 필수품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생필품의 대부분은 외화벌이 기관의 수입, 북-중 국경 지역에서의 밀수, 친척 상봉을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개인 여행자들을 통해 들어온다. 이렇게 국경지역으로 들어오는 중국 물건을 북한 전역에 운반하는 역할을 바로 써비차가 맡고 있다. 


함경북도 회령이나 나선특구를 통해 들어온 중국제 가전제품, 공업품, 식량 등은 일단 함경북도 청진으로 집결되며 여기에서 함경남도, 편안남도, 황해북도 등으로 퍼지게 된다. 


중국 단둥(丹東)과 마주하고 있는 압록강 국경 도시 신의주시를 통해 들여오는 중국산 담배들과 의류, 식료품 등은 평안남도 평성에 집결해 전국으로 퍼진다. 평성이 북한의 ‘전국구 도매시장’으로 통하는 이유 역시 각 지역 써비차들의 접근이 용이한 덕이었다.


써비차가 운반해온 옷감은 각 도시에서 개인업을 하는 봉제공들에 의해 의류로 만들어져 다시 써비차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신의주 신발공장에서 만들어진 신발들이 북쪽 끝 회령, 동남쪽 끝 원산까지 퍼지게 되는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 식량 순환 역시 써비차가 담당한다. 식량도매상들은 써비차를 전세내 농촌을 돌며 식량을 사들인 다음 대도시 식량 소매상들에게 웃돈을 얻어 되판다.


이처럼 지금 북한에서 써비차는 주민시장경제의 ‘동맥’이라고 표현할 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인민보안부의 써비차 단속 및 몰수 조치는 북한 내부 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써비차를 통한 수입을 얻던 기관 및 기업소들과 실제 차주(車主), 운전수 등이 돈벌이를 잃게 된다. 특히 차주의 손해가 만만치 않다. 2008년 중국제 소형 중고 화물차(1.5t급)가 경우 2,500~3,000 달러, 12인승 승합차의 경우 4,500~5,000달러에 밀수됐다.


써비차 몰수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이들뿐 아니다. 개인차를 명목상 기업소 차로 등록한 대가로 돈벌이를 하던 기관 기업소들도 수입이 끊기게 된다.


2005년까지만 해도 개인차를 등록해준 기업소들은 써비차의 한 달 수입 중 30% 정도를 가져갔다. 2005년 이후로는 써비차가 늘어나게 되면서 역으로 기업소가 가져가는 이익금이 차주보다 많아져 많게 7:3으로 분배됐다.


일반 주민들에게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북한에서는 거주지 외 지역으로 가려면 여행증명서를 지참해야만 갈 수 있다. 여행증명서는 거주지 인민보안소에서 발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써비차를 이용할 경우, 써비차 자체가 특정기업소의 ‘출장 차량’이기 때문에 여행증명서가 없더라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융통성이 있다. 결국 써비차의 통제는 일반 주민들의 이동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높다.


종합적으로 써비차 통제는 점차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이 써비차 통제를 의외를 장기화 시킨다면 지난해 화폐개혁으로 비롯된 북한 내부 혼란상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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