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써비차’란 무엇인가?…주민경제의 ‘동맥’






▲북한 써비차의 종류.(자료사진)ⓒ데일리NK
북한 인민보안부가 18일부터 개인용 돈벌이 차량에 대한 단속과 몰수에 돌입함에 따라 일명 ‘써비차(service-car)’의 존폐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북한의 써비차 단속은 차량 소유 및 운행 현황에 대한 재점검 수준을 넘어 지난해 화폐개혁과 같이 북한 내부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폭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써비차’란 무엇인가?


‘써비차’란 2가지 종류가 있다. 우선 각급 기관, 기업소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차량으로 주민들의 사적(私的) 이동이나 물류수송 등을 대신해주는 돈벌이에 나서는 버스, 화물차를 말한다. 기업소는 이렇게 번 돈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식량배급이나 운임, 생산 원료 확보에 활용한다.  


다음으로 실제 개인 소유 차량을 기업소 차량인 것처럼 등록하고 개인 영리활동을 벌이는 것이 있다.  이 경우 차량 소유주, 운전수, 문건 상 차량 소유기관 등 3자 협조가 필요하다. 소유주는 중국, 일본 등에서 중고차를 수입해 특정 기업소나 단위의 간부들과 짜고 기업소 소유 차량으로 등록한다. 이후 운전수를 별로도 고용, 기업소 간부에게 차량 운행증을 발급 받아 일반주민들을 태워주거나 물건을 운반해 돈벌이에 나선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기업소 간부에게 바치면, 간부는 이 돈의 일부를 개인재산으로 챙기고 일부는 기업소의 이익금으로 장부에 기록한다. 이런 메커니즘 덕에 2000년대 중반 이후 북한내부에서는 노동자 100명도 안 되는 ‘생필품 공장’ 조차 써비차를 갖게 됐다. 써비차의 운행으로 도(道)와 도 사이의 물동량과 인적 이동이 크게 늘어나, 두만강-압록강에서 밀수입된 물품이 황해도, 강원도 까지 전해졌다. 기업소의 생산과 거래가 증가하고 개인 장사가 번창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써비차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통상 써비차가 한번 운행될 때마다 운전수, 수리공 겸 보조 운전수, 화주(화물주인) 이렇게 세사람이 동승한다. 만약 써비차가 혜산에서 청진까지 물건을 싣고 간다면 가는길에 청진에 나가려는 일반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화물차 뒷칸에 태워준다. 청진까지 가는 도로에서 감시초소를 만나게 되도 별 문제가 없다. 이 차는 명목상 특정 기관 차량이며 화주는 차주로 부터 건네 받는 ‘운행증명서’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초소에서 차량과 유동인구를 단속하는 검열관에게 술이나 담배등을 찔러 주면 화물칸에 태운 승객들까지 아무 탈없이 통과할 수 있다.   


북한의 자동차,승용차  번호판은 일정한 숫자 조합을 띄고 있어 번호판만 봐도 어느기관 소속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북한의 승용차, 자동차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번호판을 배정받는다. 최고의 번호판은 ‘216’(김정일 생일)이나 ‘727’(전승기념일)로 시작된다. 김정일이 직접 선물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의 자동차의 경우 ‘216-11-101’ 식으로 번호판이 제작되는 것이다.


또 각급 단위마다 고위 번호를 사용해 차량 소속 부서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중앙당 재정 경리부 차량은 ’02’로 시작되며, 앞자리 11~12는 당기관, 앞자리 12~14는 내각 및 행정단위, 앞자리 15~17는 인민보안부, 앞자리 18~20 는 국가안전보위부, 앞자리 21은 사법 및 검찰, 앞자리 22는 대흥관리국(당 39호실 산하), 앞자리 90은 중앙당 연락소, 앞자리 46은 여객운수부문 식이다. 써비차 역시 이런 식으로 소속 기관 앞자리 번호를 부여 받고 운행한다.


여행증명서를 갖고 있지 못한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급적 권력기관의 번호판을 달고 있는 써비차를 선호한다. 따라서 번호판에 따라 써비차 운임도 차이가 난다. 군대,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서 등 권력기관의 번호판을 갖고 있는 써비차는 운임이 비싸다. 반면 식료품공장이나, 인민위원회, 농업부문 기관의 번호판을 갖고 있는 써비차는 운임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힘 없는 기관의 써비차들에 대해서는 각 초소마다 여러가지 트집을 잡는다. 화물칸에 태운 일반 주민들에 대한 여행증명서 검사도 까다롭고, 싣고 가는 화물이 국가통제품목이 아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때문에 힘 없는 기관의 써비차 차주는 좀 더 많은 뇌물과 술, 담배 등을 챙겨 다닌다.


▣ 써비차의 유래


북한은 1995년부터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연료, 전기 부족으로 열차와 자동차 운행이 사실상 중단 상태에 이르게 됐다. 심지어 “간부들도 걸어다니라”는 지시문에 따라 간부 승용차의 운행까지 통제도리 정도로 국가 운송 능력이 마비되고 만 것이다.


가장 먼저 이런 문제를 극복한 것은 바로 외화벌이 단위들이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휘발유와 디젤유를 수입해 보유하고 있던 다른 회사들의 물류를 실어다 주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한국의 택배업, 용달업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특히 각 기업소들은 당시 대형 화물트럭의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를 주목하고 중국산 ‘동풍호’나 일본산 중고 화물차를 대대적으로 들여와 막대한 이윤을 보기 시작했다.
 
수송수단에 대한 수요는 기관 및 기업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물류 이동을 담당할 화물차에 대한 수요가 넘쳤다.


1997년 나진-선봉을 거점으로 중국산 물건이 수입되자 나선에서 혜산, 신의주, 평양, 개성, 해주에 이르는 장거리 화물차 수송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 당 경공업부장까지도 1998년 자강도 방문길에서 써비차 현황을 직접 확인할 정도였다.


▣ 써비차의 유형


통상 써비차로는 화물차가 각광 받고 있다. 짐과 사람을 동시에 자유자재로 수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기관 기업소가 보유하고 있는 버스도 장거리 운행에 자주 투입된다. 통상 45석인 버스는 가운데 통로에 간의 의자까지 두고 사람을 태운다.


간부들의 승용차도 써비차로 동원된다. 간부들은 자신의 전용차 운전수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장거리 여행 대상을 찾아 돈을 벌라”고 지시하고 있다. 군대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일제 중고 승용차나 중국산 중고 찌프차의 경우 내부시트를 모두 떼어내고 최대 11명까지 태우고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적재한도 1.5t~2t 규모의 소형 화물트럭도 버스 대용으로 인기다.


▣ 써비차의 돈벌이 방식


2001년 나진-선봉에서는 고구마 값이 제일 비쌌다. 함흥을 넘어 북쪽으로 가면 고구마가 농사가 잘 되지 않으므로 함흥 이북지역에는 고구마 수요가 높았다. 당시 황해남도에서 7원(kg)이던 고구마가 나진-선봉에서는 45원(kg)을 넘었다.


나진-선봉의 장사꾼들은 중국산 생활필수품을 싣고 황해도에 가서 팔면 1.5배의 이익을 남겼다. 돌아올 때는 고구마를 싣고와 7배의 이익을 남겼다.


물론 이렇게 운행하기 위해서는 사전 투자가 필요하다. 타이어를 교체하고, 기름을 채워넣고, 운행승인서 및 운전기사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기 위한 뇌물 비용까지 합하면 당시 7만 원 정도의 돈을 소모됐다. 그러나 이렇게 써비차가 한번 왕복하면 통상 6-7만원의 순이익이 남았다. 당시는 300달러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써비차 비용은 제각각이다. 자동차의 성능, 적재량, 자동차가 속한 단위의 권력 등에 따라 운임비용이 차이가 난다. 힘없는 기관의 써비차는 길거리에서 단속에 걸릴 경우 훨씬 더 많은 뇌물을 보안원들에게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당 기관, 국가안전보위부, 검찰소, 인민보안부, 군단급 이상 부대 등에 소속된 써비차는 설사 단속에 걸려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 써비차에 타려다 쫓겨난 김경희


그녀는 승용차를 타고 강계로 향하는 길에서  길거리에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인파를 발견하고 신분을 숨긴 채 혼자 접근했다. 이들은 써비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김경희는 자동차와 부관을 뒤에 남게 하고 조용히 인파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써비차에 올랐다.


이윽고 10t짜리 트럭 써비차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서로 먼저 화물칸에 타겠다고 밀치면서 실랑이를 벌였다. 김경희도 당시 북한 돈 50원을 내고 화물칸에 오르려 했지만 그녀의 남다른 용모를 발견한 운전기사의 배려에 따라 운전수 옆자리 조수석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써비차가 출발한지 몇 분 후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났다.


“부장동지, 시간 다 됐습니다.”


운전기사는 아무리 쳐다봐도 소리가 나오는 곳을 찾을 수 없어 당황했다. 소리의 출처는 김경희 손목시계였다. 써비차를 뒤따라오던 부관이 전달하는 소리였다. 겁을 먹은 운전수는 급히 차를 세우고 김경희에게 “아줌마는 빨리 내리시오”라고 독촉했다. 결국 써비차는 김경희를 도로에 내려놓고 줄행랑을 쳤다. 당시 김경희는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 부관에게 “써비차가 참 재미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