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쌀 50만t’ 요구에 ‘100만t 지원’이란 역발상

26~27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라는 남한의 요구와 ‘식량지원과 금강산관광 재개 우선’이라는 북한의 의견이 충돌한 채 마무리됐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줄곧 ‘식량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요구했다. 특히 ‘쌀 50만t과 비료 30만t’이라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며 남측의 지원을 촉구했다. 최근의 식량난 타계를 위해 ‘이산가족상봉’ 카드와 연계시켜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요구한 ‘쌀 50만t과 비료 30만t’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지원했던 인도적 지원 규모와 엇비슷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정부는 북한에 총 쌀 240만t을 지원한 바 있다.



물론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도 요구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 문제는 지난 2008년 우리 측 관광객이 북측 군인에게 피살돼 중단된 것이어서 이에 따른 북측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풀기 힘들다. 똑같은 위협에 노출될 수 있는 곳에 우리 민간인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식량지원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금강산 관광을 통한 외화유입은 김정일의 통치자금이 되지만 식량지원은 북한 인민들을 살릴 수 있다. 지금 당장 북측이 필요로 한 것은 식량과 비료로 보인다. 비료 같은 경우 북한은 그동안 전적으로 남한 지원에 의존했기 때문에 지원 중단으로 수확량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따라서 식량과 비료의 지원은 단절된 남북관계에 숨통을 틔게 해줄 수 주요한 카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와 ‘대북 식량지원’을 연계시켜 대응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무작정 대북지원에 나설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다.



문제는 북한 정권은 지난 30년 동안 아웅산 테러와 칼기 폭파 사건,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수많은 테러행위를 자행했지만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것. 이번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결국은 사과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갈 공산이 크다.



때문에 우리 정부가 ‘천안함 폭침 사과’와 ‘식량지원’을 연계시키는 것은 남북관계난 천안함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정부나 여당 일각에서 지금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엎드려 절 받겠다’는 식이다. 식량지원 해줄 테니 제발 사과좀 하라는 것이다. 결국 시간을 끌수록 북한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46명의 용사가 희생됐는데 고작 사과 한마디 했다고 우르르 몰려가 식량지원을 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식량지원을 막으면서까지 사과를 요구했는데 북한이 무시한다면 북한의 외교력에도 상처 아닌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연계고리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젠 정부도 지혜롭게 출구전략을 세워야 한다. 되지도 않는 카드를 들고 만지작 거려봤자 정부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는 힘들다. 지금 당장 대북압박 카드는 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북한 인민들에게 돌아가고 만다. 천안함 사태 사과와 대북지원의 분리가 필요한 이유다. 사과를 요구할 것은 끝까지 하면서 우린 북한 인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 26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제기한 ‘북한 정권과 주민들에 대한 분리 대응’은 적절한 대안일 수 있다. 그는 “북한정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민족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다 포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정일 정권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결코 용서하거나 좌시할 수 없지만 정권 수뇌부와 아무 상관없이 고통받고 있는 인민들에 대해서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북한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히 식량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한두 해 문제의 것이 아닌 만성적인 문제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 이상 해결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 정권이 개혁개방 하기를 기다릴 수만도 없다. 



정부의 배급만 바라보다 200~30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는 달리 지금의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했다. 그래서 일부 대북지원 단체들이 주장하는 대량아사자 발생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식량 부족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번 적십자회담에서 북한은 ‘쌀 50만t과 비료 30만t’을 요구했다. 앞서 김정일은 지난 5월 방중 당시 식량 50만t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식량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우리 정부의 ‘역발상’이 필요하다. ‘쌀 100만t’과 ‘비료 50만t 지원’은 그런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을 100만t으로 추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연간 식량 생산량이 400만t, 소비량이 540만t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100만t 규모는 결코 적지 않다. 북한의 식량난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도 있을 양이다.


식량지원을 통해 대한민국이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야 한다. 그래서 북한 정권에서 인민들을 분리해야 한다. 이는 향후 북한 민주화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지난 정부처럼 ‘묻지마식 대북지원’은 북한 인민들을 살리는 지원이 아니다. 지원을 위해선 차관 형식이 아닌 무상지원 방식으로 하되 분배 모니터링을 WFP수준에 맞추거나 그 이상으로 분배 관철시켜야 한다. 분배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 식량지원은 소규모라도 결코 용납되어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단추가 중요한데 얼마전 정부가 취한 태도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북한 수해지원을 위해 긴급구호 형식으로 지원한 쌀 5000t은 양은 적지만 MB정부 출범후 첫 식량지원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분배 모니터링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이와 함께, 대북지원과 인도적 사안을 연계시켜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나 국군포로·납북자 송환을 쌀 100만t·비료 50만t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상호주의’ 차원에서 서로 간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이 제시한 수치의 두 배에 달하는 ‘쌀 100만t’과 ‘비료 50만t 지원’ 카드는 대북지원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정부를 비난했던 야당과 진보·좌파 시민사회단체들의 화살을 빗겨갈 수 있고,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일타삼매’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만약 북한이 우리가 제시한 조건들 때문에 ‘쌀 100만t’과 ‘비료 50만t 지원’이라는 카드를 받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비난은 고스란히 북한 정권의 몫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도 정부를 비난하진 못할 것이다.



야당과 진보·좌파 시민사회단체가 대북식량지원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을 위함일 것이다. 그것은 곧 지원식량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한다면 대북지원의 명분도 사라지는 이유가 된다. 이들도 북한이 우리 정부가 제시한 카드를 받아들이도록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



야당과 진보·좌파 시민사회단체들은 ‘북한인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식량권’이 가장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주민들의 식량권 해결을 위해선 지원 식량이 군량미로 유입되는지, 인민들에게 분배되는지를 철저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다. 그건 곧 우리의 의무이다.



그런 이유로 대량의 식량지원을 분배 투명성 재고와 이산가족문제와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정부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기면서 북한 인민들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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