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쌀지원 논란…이제 명확히 정리할 때 됐다

I.
이제 명확히 정리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북한에 쌀을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쌀의 지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원칙의 확정이다. 현재 정부의 입장은 천안함 폭침에 대하여 김정일 정권이 사과를 하지 않으면 대규모 식량지원은 없다는 것이다.


우선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에 대한 찬반은 단일한 시각에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순전히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인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라면 어느 누구도 식량지원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할 수도 없다.


다른 한편 핵과 다량의 생화학 무기를 갖고 무력통일노선을 포기하지 않은 채 기술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있는 북한에 식량지원을 한다는 것은 군사전략적으로 자해행위로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남포항에 쌀이 하역되면 북한군대로 먼저 간다는 잘 알려진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식량지원은 북한군의 전력강화에 기여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김정일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북한 내부의 급격한 변화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대북 식량지원이 또다시 북한정권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북한해방의 날’을 뒤로 미루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모두 각자의 시각에서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주장들이다.


II.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비록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근거가 있다거나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식량원조의 주체가 누구이며 수혜자가 누구인지이다. 지난 정권은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북한에 대량으로 쌀을 보낼 때 그것은 차관형식을 빌었다. 즉 형식적으로 김정일 정권에게 식량을 꾸어주어 그 쌀을 어떤 용도에 사용할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하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적십자사에서 보낸 5000톤의 쌀에 대하여 북한이 ‘차관’ 운운한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지난 정권의 식량지원 방식의 관성이 남아 있음을 말해준다.


확실히 해야 할 점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의 수혜자는 김정일 정권이 아니라 북한인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분배투명성이 그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쌀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북한군대의 전력증강이나 북한정권의 안정을 이유로 식량지원에 반대하는 것은 옳지만, 그런 주장은 북한인민에게 보낸 식량이 전달될 수 없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현재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을 폭침시킨 김정일 정권의 전쟁도발 행위에 대하여 사과를 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 쌀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원칙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정부의 입장은 그 전후 맥락으로 보아 직간접적으로 사과만 하면 대규모 식량지원을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46명의 한국 수병을 죽인 살인행위에 대하여 사과를 하면 ‘포상’을 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살인자가 반성을 하면 면책은 물론 포상을 하는 것이 인간사회에서 정상인가? 식량지원을 김정일 정권의 사과와 연계시키는 것은 수혜자가 김정일 정권이라는 점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김정일과 그의 수하들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한국정부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대북정책의 영역을 연계시켜 자칫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칠 수 있는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


III.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 정권이 천안함 폭침 도발행위에 사과할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만일 김정일 정권이 천안함 폭침도발을 사과한다면, 그 정치적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이 사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일 김정일이 그 어떤 비선조직을 통해 간접적이건 암시적이건 이명박 정부에게 사과를 할 경우 한국정부는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 정부의 몇몇 인사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의 사과 사실이 알려질 경우 중국과 러시아 정부는 물론 한국의 천안함 음모설, 천안함 좌초설 신도들이 받을 타격은 크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이 받을 타격은 실로 막심하다. 그러나 김정일이 북한인민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자신의 정권 지지기반을 허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김정일의 사과가 가져오는 정치적 파급효과가 막대하다고 해서, 첫째 그 영역이 다른 식량원조와 연결시키고, 둘째 사실상 그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조건을 내세움으로써 한국정부는 인도주의적 지원 원칙을 불투명하게 만듬과 동시에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만을 갖고 오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6자회담 재개요구 뿐 아니라, 미국정부도 6자회담이건 새로운 접촉방식이건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IV.
왜 이런 상황을 한국정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천안함 폭침에 대하여 김정일 정권에게 마땅히 했어야 할 대응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천안함 폭침 이후 북한에 강화된 금융제제조치를 선포하였다. 이 조치는 6자회담의 재개여부와 연계되어 있지 않다. 물론 부시정부 때처럼 김정일 정권과의 주고받기 과정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한국정부처럼 식량지원을 북한의 천안함 사과에 연계시키는 ‘범주의 오류’를 범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정부는 국민에게 약속한 ‘단호한 응징’도, ‘대북심리전재개’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과에 식량지원을 연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원으로 응징을 대신하는 것이며, 그것은 응징으로 지원을 대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자의 의미 모두를 망가뜨리는 행위일 뿐이다.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박(薄)하게 대하여야 할 일에 후(厚)하게 대하고, 후하게 대하여야 할 일에 박하게 대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당에서는 핵이나 천안함이나 국군포로 어느 분야에서라도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오면 대북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한마디로 시험문제의 답을 늘려 어떻게 해서라도 합격시켜 주겠다는 식으로 북한에 선처를 애걸하고 있다.


V.
북한인민에 대한 식량지원은 이들이 굶주리고, 그리고 이들에게 식량이 전해질 수 있다는 전제 이외에 어떤 조건에도 연계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한인민을 해방시키고자 노력하면서, 살리기 위해서 죽도로 방치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북한의 식량사정을 면밀히 추적해야 하고, 북한인민에게 식량이 전달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유엔식량기구(WFP)를 통하는 방법, 북한의 시장에 직간접으로 개입하는 방법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의 대가로 북한인민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희생자 가족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살인자를 껴안는 것은 물론, 그 식량이 어디로 갈 지에 대해서도 전혀 따지지 않는, 우리가 그토록 비판했던 ‘묻지마 퍼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천안함 폭침과 같은 패륜적 도발 행위에 대하여 김정일 정권이 인정하거나 사과한다면 그것은 김정일 정권이 아니다. 그것은 아예 기대할 수조차 없는 일이며, 따라서 이런 도발에 대응하는 방법은 사과의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김정일 정권을 정조준한 응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이나 유엔이 천안함 폭침에 대하여 김정일이 응당 치러야 할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면 사과 같은 것은 요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사과요구가 나오고 그것이 식량지원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점에서 우리는 냉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다면 ‘얼펑(二胖) 김정일’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김정일은 양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양심이 부족할 뿐이다. 식량지원의 대상은 김정일도 아니고 인민군도 아니다. 식량지원의 대상은 북한주민이다. 따라서 천안함 폭침 사과와 식량지원을 연결하는 것은 한국의 국민정서이지, 논리는 아니다. 또 국민정서는 정책실현에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지만 정책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북한인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한국이 일정부분 해결해 주는 것은 북한체제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김정일의 체제유지 압박을 덜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윤리적 문제가 있다. 우리가 김정일 정권의 종식을 원하는 것은 북한인민을 살리기 위해서다. 이제 김정권의 종식을 위해 살릴 수 있는 북한인민, 특이 노약자와 어린이, 산모들을 살리지 않는다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목적과 수단의 불일치를 피할 수 없다. 즉 살리기 위해 죽일 수 없다는 윤리적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북한인민의 점증하는 혐오감은 북한체제의 급격한 변화 후에 북한인민과 한국과의 관계정립에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단기적으로는 북한인민에 대한 식량지원이 북한체제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북화합과 통일에 더 큰 도움이 된다. 여기서 한국은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그러나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북한체제의 동요보다 장기적인 그러나 상대적으로 확실한 북한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분배투명성이다. 왜냐하면 김정일을 통과하지 않고 북한주민에게 직접 식량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통일부 직원 몇 명이 수십만 톤의 쌀을 배로 싣고 가 남포항에 하역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음이 이미 밝혀졌다. 이 방식은 북한인민이 아니라 주지육림과 산해진미에 지친 김정일에게 통치자금을 대주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물론 쌀지원에서 중요한 점은 총량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쌀은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없으므로 어느 누가 중간에서 착복하더라도 결국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점, 또 덤프식 식량지원이 일차적으로 인민군에 가더라도 순차적으로 북한 주민의 식량을 탈취하는 마적질을 줄일 것이라는 주장 모두 일견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