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체면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눈길을 끈다.
북한에서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체면이란 말은 많이 써도 체면주의란 말은 사전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 매체와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첫째 의제로 “쌍방 당국이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에 맞게 일체 체면주의를 버리기 위한 중대조치를 취하자는 것”을 제의했다.
권호웅 북측 단장은 14일 기조발언을 통해 “정치.군사분야에서 체면주의와 적대관계를 해소할 것”을 강조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6.17면담에서 “북남관계발전을 위한 원칙적 문제들을 밝히신 데 따라 체면주의를 없애고 새로운 회담문화가 창조됐다”고 지적했다.
권 단장은 특히 체면주의를 벗어난 대표적 사례로 8.15민족대축전 때 북측 대표들의 현충원 방문, 북측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등을 꼽았다.
권 단장의 이같은 발언을 살펴보면 결국 북한이 주장하는 ‘체면주의 탈피’란 과거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상호 이익과 현실정에 맞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현실이 만들어 낸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에 따른 낡은 명분에 연연하지 말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격히 변화된 남북관계의 새로운 환경에 맞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자는 주장인 셈이다.
권 단장이 “아직도 상대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서로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 잘 드러난다.
결국 북측 대표단이 6.25전쟁 때 총부리를 맞댔던 남측 전사자의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탑을 방문한 것은 ’남조선은 원수’라는 그동안의 인식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관계 발전을 위해 내린 고심어린 결정임을 엿볼 수 있다.
북측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 역시 남측이 북측을 하나의 실체로 인정해 다른 나라의 선박과 동등한 지위를 갖도록 했을 뿐 아니라 북측에 부족한 기름을 절약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남북 모두 과거의 고정관념을 깬 긍정적 사례인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북측은 이번 회담에서 “우리에 대한 존중을 금기시하는 낡은 관념과 관습을 없애고 이러한 법률, 제도적장치를 대담하게 없애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등의 철폐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