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의주특구 3년…어떻게 돼 가나

북한이 2002년 9월 야심차게 출범시켰던 신의주 특별행정구는 초대 특구 장관으로 임명됐던 양빈(楊斌)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이 중국 당국에 전격 구속돼 좌초됐다.

입법.사법.행정 등 독자적인 3권을 부여, 사실상 홍콩식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표방하는 등 북한 당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신의주특구는 계획 발표 한 달 만에 불거진 ‘양빈 사태’로 중단된 채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신의주특구는 2002년 9월12일 북한이 평안북도 신의주시 지역과 의주.염주.철산군 지역 일부를 포함한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지정하고 신의주특구에 독자적인 입법.행정.사법권과 토지 개발.이용.관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6장 101조)을 채택했다.

라진.선봉지구의 실패 경험을 딛고 추진한 신의주특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1년 ‘상하이 쇼크’와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에 뒤이은 획기적 조치로 평가됐다.

그러나 2002년 10월 스스로 김 위원장의 양자로 자처하던 양빈은 임명 10일만에 구속됐고 중국 당국으로부터 농업용지 불법 전용과 합동사기,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징역 18년형을 선고 받고 선양(瀋陽)시 제1감옥에 수감돼 있다.

중국의 양빈 구속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단둥(丹東)시와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 등 동북3성 지역의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견제하고 안보상으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중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북한과 양빈이 신의주특구를 카지노 등 도박.유흥 위주로 개발하려 하자 동북3성 일대의 화교자본이 도박장에서 탕진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양빈 사태’와 북핵문제 등 대외관계의 장애로 신의주특구 건설이 지체되고 있지만 북한은 내부적으로 신의주특구 개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신의주-개성-금강산-라진.선봉 등 4개 지역 특구 개발 비전을 갖고 있는데 신의주를 중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산출신 화교 사르샹(沙日香.54. 미국명 줄리 사)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풀러튼 시장 등의 특구장관 내정설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2003년 8월 “내각 참사인 계승해가 신의주 행정특구의 대외업무를 맡아보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신의주특구는 당초 북한의 거창한 청사진과 달리 중국의 입장과 북한의 개혁의지, 투명성, 대외관계 등이 얽히고 설켜 재추진에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며 재추진 되더라도 처음 계획대로 성공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신의주가 아닌 개성지구 개발을 권장했다고 알려진 것처럼 동북3성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중국이 경쟁지역이 될 신의주개발을 내심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2002년 10월 불거진 핵문제가 북한을 옥죄고 있는 데다 핵문제가 풀리더라도 서방세계와 남한 기업이 신의주지역에 눈을 돌릴지는 미지수이다.

남한 기업은 오히려 개성공단 쪽에 관심이 기울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신의주특구는 중국의 거부감이 여전해 성공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단둥과 신의주를 아우르는 북.중 공동경제무역지대로 개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도 “항만시설이 취약한 신의주가 성공하려면 인접한 단둥항을 이용해야 하는 데다 신의주-단둥을 통한 북.중 교역량을 고려할 때 일정기간 후에는 공동개발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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